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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6명이 나눠 쓴 대본을 함께 읽고 피드백을 받아 1차 수정을 했다. 그걸 J가 모아 말투도 맞추고 전체적인 흐름도 편집해서 통대본을 만들었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역할을 덥썩! 맡아준 우리의 큰언니~~ 고마워요 *^^* 지난 주에 했던 작업을 또 해서 그런지 꾸리꾸리한 날씨 때문인지 오늘은 좀 처지고 지치는 날이었다. W는 “무조건 말을 많이 해야한다!”며 우리를 채찍질했고 우리는 망설임, 자의식, 피로와 싸우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하나의 아Q를 만들 수 있을까?
노인 :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아Q는 정말 일꾼이야!”
아Q : (노인 앞에 서서 눈을 꿈뻑인다)
마을사람 1과 2 : (진심인지 조롱인지 아리송하다는 눈길을 주고받고 어깨를 으쓱한다.)
아Q : (어깨를 으쓱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럼~ 일꾼이지. 에헴. 아무렴. 최고의 일꾼이지. 날품팔이로서는 최고라니까.
대본의 첫 장에 나오는 부분이다. 굵은 글씨체로 된 저 한 문장을 가지고 무려 1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했다. 결국 아Q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였는데 저 문장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크게 두 가지 의견이 대립했는데 '아Q는 남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당당한 사람이 아니다'와 '아Q의 허세와 거드름을 봤을 때 충분히 저럴 사람이다'란 의견이 맞붙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아Q의 캐릭터가 보다 적극적/능동적으로 표현되느냐, 아니면 소극적/찌질함으로 표현되느냐가 달라지는 부분이었다. 사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뒷부분에서도 아Q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아Q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했다.
의견이 부딪혔던 건 우리가 저마다 갖고 있는 아Q의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아Q의 이미지를 설명하고 책에서 그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야만 했다. 막상 이야기할 땐 내가 갖고 있는 아Q가 맞다고 의심치 않았는데 텍스트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ㅎㅎ 무언가를 읽을 때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 가치관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기면 설득이 안 된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점점 지쳐가던 중 “진짜 일꾼이구먼” 정도만 하자, “음흠!”만 하자, 앞에 노인 대사에서 느낌을 달리 해보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결국 저 부분을 연기할 사람이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인물 분석 맛보기 한 스푼!
이때 아Q는 웃통을 벗은 채 깡마른 몰골로 멋쩍은 듯 노인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이 진심인지 조롱인지 아리송해하고 있는데, 아Q는 기분이 날아가고 있었다. -『외침』, <아Q정전>, 107p
아Q의 캐릭터를 잡기 위해서 다음 주에 본격적으로 할 인물 분석을 맛보기로 해보았다. w는 위의 본문에서 “아Q가 왜 멋쩍게 서 있었을까요? 그러다가 왜 기분이 날아갔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던졌다.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스스로를 칭찬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다,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들이 쳐다봐서 기분이 좋아졌다 등 같은 문장을 해석하는 게 조금씩 달랐다. w는 그래서 인물을 분석할 때 분석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텍스트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합리적인 게 반드시 ‘객관적’인 건 아니라고 한다. 합리적 근거를 찾는 과정 안에 ‘나’라는 주체가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난 이 부분이 참 재밌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건 내 세계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근거가 없으면 단지 나를 우길 뿐이라는 것. 그래서 나로 살기 위해선 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우리는 아Q의 정신승리법을 크게 3단계로 나누어서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먼 관계)-여자와의 관계(성욕)-생계 문제(식욕)로 점차 고조시키려고 한다. 이후에 아Q가 대처에 다녀오고 혁명당 소동을 겪는 과정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부각시킬 것이다. 그리고 아Q의 죽음을 최대한 밝게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의 노예 근성이 아Q를 죽였다’는 메시지를 담기로 했다. “우리 모두가 아Q다.” 우리가 연극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 한 문장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러니 그냥 대충 살자는 타협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아Q를 죽인 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의 노예 근성이 나를 죽이고, 또 다른 아Q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이 끝난 뒤 등장한 감시자 철현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