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지금 우리 공부는

지금 우리 공부는

증여 속의 인간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2-07-01 22:27 조회98회 댓글1건

본문


증여 속의 인간


이유진 (청공자, 2학년)


  마오리 원주민에게는 ‘하우’라는 관념이 있다. 『증여론』의 저자 마르셀 모스는 하우를 ‘사물에 깃든 영’(216p)으로 해석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있는데, 이 원리가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힘이 하우라는 원리가 바로 마르셀 모스가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리는 민족지학자가 원주민의 신비화된(종교적) 원리로 원주민의 경제를 설명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만일 교환의 이유가 단지 하우라면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질문은 이렇다. ‘되갚아야 하는 힘’으로만 증여가 작동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이들이 두 명이 서로간의 교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째 사람을 끌고와 ‘교환의 삼각관계’를 이루어야만 하는가?


증여의 정치적 성격

  우리는 선물의 교환은 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과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인물간의 교환은 ‘한 사람의 선물이 다른 사람의 자본으로 전환’(231p)되며 이루어진다. 만일 A가 가지고 있는 a라는 물건을 B에게 줘서 b라는 보답으로 돌려받았을 때, A에게 a보다 b가 더 필요한 상태였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반면에 증여는 받은 선물로 인해 결실을 이루었음을 제 3자를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이익을 창출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의 성격은 서구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익의 성격(전자)과는 조금 다르다. 증여의 이익에는 타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여인이 기동대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베스트에게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은 채 그 물건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한 셈이 된다. 그녀는 베스트의 망토가 파생시킨 산물을 전유한 것이 된다. 그녀는 정당하지 못하게 얻은 이익의 악마, 즉 ‘하우 휘티아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달리 표현하면, 그녀는 카이 하우(kai hau), 즉 하우를 먹은 죄를 범한 것이다.

마셜 살린스, 『석기시대 경제학』, 한울 아카데미, 233p


  원주민 여인이 베스트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증여는 자신의 이 익만을 챙기지 않으며, 선물을 받은 타인의 증진을 함께 이루어낸다. 즉 서구사회의 일반적인 이익이 ‘내가 나아간다’라면, 원주민의 증여를 통한 이익은 ‘너와 내가 함께 나아간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증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결코 타인을 희생시켜서 이익을 취할 수 없는 사회이다.

  교환의 이익에 타자가 포함되어 있는 증여는 단순히 경제적 기술이 아닌 정치적 기술이 된다. 선물을 통해서 사람은 타자와의 평화적인 관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여 속의 인간

  교환은 단순히 경제적인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인 기술이다. 정치가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증여를 기본으로 두는 원주민 사회가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해진다.

  증여는 타자의 이익과 나의 이익을 포함하고 있는 선물이다. 이것은 언뜻 보면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취지인 것 같지만, 자신의 이익을 반드시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주민 사회는 그저 서로 돕기만 하는 사회가 아니다. 선물을 받는 대상은 주는 사람에게 있어 목적이자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원주민 사회에서는 ‘사물이 일정 정도 인격으로서 관계를 맺고 개인은 일정 정도 사물로서 관계를 맺는다’(262p). 즉, 인간을 어느 정도 상품화시키는 것이다. 서구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이 사실에 대해 반감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주민 사회를 자민족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증여론』의 이러한 함의는 외적인 관계와 거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증여론』은 분절 사회의 내적 취약성, 즉 그 구조적 분열성을 제시함으로써 전쟁 아니면 교역이라는 고전적 양자택일을 사회적 삶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우연적인 일화에서 지속적인 현존으로 전환시킨다. 이것이 바로 모스가 주장하는 자연으로의 회귀가 갖는 최고의 중요성이다. 이로부터 원시 사회는 전쟁상태와 전쟁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섭은 평화의 조약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마셜 살린스, 『석기시대 경제학』, 한울 아카데미, 263~364p


  원주민 사회에서 사물과 개인의 성격이 혼동되는 것은 인간을 사물의 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물을 주는 나(A)’는 ‘선물을 받는 너(B)’와 ‘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A와 B는 서로 내부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은 증여라는 교환관계를 통해서 ‘전쟁상태(힘에 자유롭게 호소하는 것-250p)’와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만일 교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들은 평화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쟁상태를 사회 내에 들이지 않을 것이고, 교환이 실패한다면 사회는 전쟁상태가 될 것이다. 그들은 사회가 전쟁상태가 되었을 때 그들이 겪을 불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 사회에서 증여를 통해 얻는 이익은 단순히 물질적 이익뿐만이 아니라, 그들 사회의 지속적인 현존이다. 그렇기에 원주민 사회에서의 증여를 통한 이익에는 나의 선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쳐서 보답으로 돌아왔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서구문명사회와 비교하여

  서구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도 증여의 형태는 종종 드러난다. 예를 들어 후원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영화를 찍을 건데 자금이 부족하다. 후원을 통해 영화를 촬영할 수만 있게 해준다면 추후에 굿즈 등으로 보답하겠다’라는 식이다. 이렇게 A가 B에게 후원을 하면 B는 영화를 촬영하여 C에게 배급을 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으로 B는 A에게 보답을 한다. 방식 자체는 증여와 굉장히 비슷하다. 그러나 서구문명사회의 증여는 원주민 사회의 증여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들 사회가 인간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에서 드러나는 차이이다.

  서구문명사회에서의 증여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이타적이고 화기애애하며 순박한 교환이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외부적인 관계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외부에 있는 너에게 이만큼이나 베풀었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만일 B가 A에게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A는 B에게 있어 서로간의 의리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할 것이다. 즉 서구문명사회에서의 증여는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다. 저자가 나에게 보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원주민 사회는 막연하게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이타적이고 화기애애하며 순박한 사회가 아니다. 이들의 증여 관계는 내부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하여 증여자A는 대상B와 채무 관계를 맺었다기보다는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들의 증여는 전쟁상태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다. 하여 원주민 사회에서의 되갚지 않음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인간 사회(혹은 종?)의 차원에서 악한 것이 된다. 그것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망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지속적으로 현존하기 위해 약속한 의무를 져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2022. 06. 27. / 청공자 2학년 2학기 밴드-되기 세미나)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옥지님의 댓글

옥지 작성일

증여는 사회의 현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였군요!
원주민의 사회에서 선물이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 나에게 돌아왔느냐가
이익의 척도가 된다는 것이 감명 깊었습니다.
큰 이익만 바라는 마음에서, 내게서 나간 것이 많은 사람을 거쳐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