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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름다움에 갇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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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하 작성일22-12-26 09:57 조회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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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름다움에 갇혀 살아간다

-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뷰티!

 


청공자 2학년 이유진


연말이 다가오니 할 일들이 몰아닥쳐서 영화를 볼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매일 책 읽고, 글 쓰고, 세미나 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세미나하고의 연속이었을까. 물론 그 사이에 놀 건 다 놀긴 했다. 다만 영화를 볼 정도의 심리적 여유는 없었던 것. 그래서 요 몇 주간 영화 글쓰기에 소홀했다. 무엇을 볼 지, 어떤 얘기를 할 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북꼼에서 진행하는 ‘북-씨네마’는 내게 한 줄기 빛이었다.


‘북-씨네마’는 채운샘의 『예술을 묻다』라는 책이 메인으로 두고 책과 영화를 함께 보는 북꼼 프로그램이다. 책이 4장으로 나뉘어져있어서 프로그램도 4회차로 진행된다. 진행 방법은 이런 식이다. 우선 신청자들이 각자 책을 읽어온다. 분량은 1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나는 장소는 깨봉의 공플. 그곳에서 우리는 읽은 책의 주제에 맞는 영화를 본다. 첫 회차에는 <시네마 천국>을 보았고, 2회차에는 <이웃집에 신이 산다>, 3회차에는 <아메리칸 뷰티>를 보았다. 곧 있을 4회차에서는 <사랑을 카피하다>를 볼 예정이다.


이번에 영화 글쓰기에서 다룰 영화는 ‘북-씨네마’에서 북꼼 사람들과 함께 본 <아메리칸 뷰티>이다. <아메리칸 뷰티>와 함께 본 책의 주제는 ‘미추’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한 것인가?’, ‘미추를 정하는 기준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는 아무래도 <아메리칸 뷰티>가 최적일 것 같아서였다.


<아메리칸 뷰티>는 내가 열아홉, 스무 살 쯤에 한 번 본 영화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좀 어이없는 영화네’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도 유명하고 평이 좋으니까 나도 좋은 줄 알고 넘어갔었다. 이렇게 사람 따라 좋다고 대충 여기고 넘어간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영화를 좀 제대로 보는 시도를 해보자.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 1999

 

‘아메리칸 뷰티’라는 단어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슈퍼 모델’이다. 미국의 키 크고 예쁘고 몸매 좋은 금발에 푸른 눈의 미녀가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결국 엄청 유명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다. ‘아메리칸 뷰티’라면 미녀와 돈, 성공이 한데 어우러진 꿈만 같은 상황이 상상된다. 뷰티는 곧 드림인 것!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에는 그런 엄청난 절세 미녀도, 입이 떡 벌어지는 돈도, 기가 막힌 성공담도 없다. 아, 금발 미녀라는 전형적인 미국 미인상이 한 명 나오기는 한다. 그래봤자 그 여자애는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 한 어린애인데다가 이 영화는 그 애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만 무수히 많이 등장할 뿐이다.


이쯤에서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해보겠다. 영화는 버냄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래스터 버냄은 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가 젊은 시절에는 한 가닥 했을지는 몰라도, 중년이 된 그에게는 더 이상 삶의 의욕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딸도 그의 무기력한 모습을 한심하게 여긴다. 래스터 버냄의 아내 캐롤린 버냄은 부동산 중개업자인데,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주 가득한 여성이다. 같은 부동산업자로서 승승장구하는 버티 케인을 질투하면서도 존경하고, 그처럼 성공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자책하고 비난한다. 그들의 딸 제인 버냄은 자신의 부모 둘 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한심한 아버지와, 성공에 목마르고 뭣도 없는데 고고한 척 하는 어머니라니! 제인은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남들은 어떻게든 예뻐보이고 돋보이려고 화장하고 옷을 꾸며 입는데 제인은 어떻게든 못나게 보이려고 화장하고 후줄근한 옷을 입는다. 가슴 성형을 위해서 돈을 모으고는 있는데, 그건 가슴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라 가슴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여튼 참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함께 다니는 친구 안젤라는 전형적인 미국 미인이다. 젋고, 하얀 피부에,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치어리더부 퀸카! 어느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절대 빠지지 않는 설정의 미녀 캐릭터다.


문제는 래스터 버냄이 딸의 치어리더 공연을 보려고 학교를 간 것에서 시작한다. 삶이 그저 무기력하던 그는 치어리더 공연을 하는 안젤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딸의 친구에게 반하다니! 참 이해하기 힘들고 역겨운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쨌건 이 사건이 래스터 버냄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그가 추구할만한 ‘뷰티’를 가지게 된다는 것. 바로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이다.

 

래스터 버냄의 환상 속 안젤라

 

안젤라를 만나고 난 이후에 래스터 버냄이 추구하게 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젊고 아름다운 금발 미녀? 표면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그가 추구하게 된 것은 바로 ‘젊음’이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안젤라를 보면서 그녀와 사귈 수 있을 만큼 젊고 활력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청년 시절에 하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기 시작한다. 패기 넘치게 원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젊었을 때 일했던 드라이브 스루 버거집에서 일을 시작한다. 비싸고 간지나는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착실하게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 속에서는 래스터가 아닌 다른 이들도 모두 각자만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다. 캐롤린 버냄은 ‘성공’이라는 아름다움에 빠져있다. 그녀는 성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비루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녀가 한 선택은?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 ‘버디 케인’과 바람을 피우는 것이다. 안젤라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특별함’이다. 전형적인 미국 미녀 모습을 한 그녀는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삶을 원한다. 동급생들은 감히 상상도 못해본 특별한 삶!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원하고, 미모로 세상을 재패하는 그런 판타스틱한 라이프랄까. 물론 현실 속에 그런 삶은 없다. 그녀의 모델 사진을 찍어준다는 빌미로 그녀에게 성행위를 요구하는 변태 사진사랑, 자신을 욕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의 아버지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특별함을 바라 마지않았던 안젤라는 다른 동급생처럼 평범한 남자애랑 연애하고 평범한 인생을 사느니 그런 변태들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선택한다. 친구의 아버지와 잔 고등학생 여자애라니. 얼마나 특별한가!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미美’에 절실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안다. 그게 얼마나 꼴불견인지를. 아름다움은 그들을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는다. 오만해지기를, 자기혐오에 빠지기를, 자신을 위험 속에 내던져버리기를! 자신의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게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메리칸 뷰티’의 특징 하나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상대방과 공유되지 못한다. 래스터 버냄이 그리는 ‘젊음’이라는 아름다움도, 캐롤린의 ‘성공’도, 안젤라의 ‘특별함’이라는 아름다움도 모두 서로에게 이해될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서로를 더욱 더 이해할 수 없게끔 우리를 몰아간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개인으로 분절시키는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는 확실히 이런 ‘각자의 아름다움’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판하는 게 있으면 추구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리키 피츠가 촬영한 아름다움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아름다움에 진리가 있을까. 그래도 어느 정도 주목받을만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뷰티>에는 특이한 캐릭터가 한 명 더 나온다. 버냄의 옆집에 이사 온 피츠 집안의 아들, 리키 피츠다. 리키 피츠는 우리가 여태 보지 못하고 있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캐릭터라니. 나는 그런 캐릭터를 떠올릴 때 어딘가 해탈한 듯한 승려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리키 피츠도 이 영화의 어느 등장인물 못지않게 골 때리는 인물이다.


리키 피츠는 마약 딜러다. 아버지에게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접시닦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는 접시 닦이 일을 하면서 만난 중산층에게 대마를 판매한다. 거기다 그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촬영하는 습관이 있다. 거리의 바람, 풀, 새 이런 것만 촬영한다면 꽤 건전한 습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옆집 여자애의 사생활마저도 촬영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런 스토커짓을 몰래도 아니고 대놓고 한다는 거다. 어둑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 속에서 옆집 남자애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욕을 했는데 그 남자애가 되려 인사를 하면서 계속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말 소름끼치지 않는가?


그런데 일반적인 상식 속에서는 사이코 변태 범죄자나 다름없는 이 남자애가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 속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된다. 어떻게? 그가 매번 들고 다니는 캠코더에 주목해보자. 그는 허구한 날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하고 다닌다. 그가 촬영하는 것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옆집 여자애, 바람에 떠다니는 비닐봉투, 햇살, 집안에 허망하게 앉아있는 어머니, 운동을 하는 래스터 버냄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것을 촬영하는 리키 피츠는 말한다. 자신은 아름다운 것을 촬영한다고.


사이코(같은) 남자애 손에 들린 캠코더 속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일까? ‘북-씨네마’를 함께 하는 한 세미나원이 나에게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인 것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알레그리 미제레레’라는 음악을 떠올렸다. 어떤 신적이고, 숭고하고, 순결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런 것 말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숭고한 것, 순결한 것, 순수한 것, 선한 것. 그러나 아름다움은 절대 숭고하고 순수한 것이 아니다. 그건 어느 범죄자의 손에 들려있을 수도 있고, 쓰레기통 속에 있을 수도 있으며, 그저 길바닥에 흩뿌려져 있을 수도 있는 거다. 아름다움은 감히 손댈 수 없는 권위의 영역에 있지 않다. 손 댈 수도, 가질 수도 없이 그저 좇아가야만 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를 굴복시키고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고, 캠코더에 담을 수 있는 실재하는 아름다움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실체 없는 이상향을 좇으며 아름다움을 상상하고 있을 때, 내 손에 쥔 바로 이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샘 멘더스 감독은 리키 피츠와 그의 캠코더를 영화 속에 등장 시킨 것이 아닐까?

 

일상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버냄

 

한참 젊음과 방탕함에 눈이 멀었던 래스터 버냄도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정신을 차린다. 그렇게 갈망하던 아름다움의 상징, 안젤라를 손에 넣고 성교까지 하려던 찰나, ‘처음이에요’라는 안젤라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래스터가 상상했던 안젤라는 혈기왕성하고, 무서울 것이 없으며 방탕하고 젊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막상 손에 넣고 보니 안젤라는 아직 어리숙하고, 겁먹었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애였을 뿐이었다. 그 순간 래스터는 자신이 좇던 아름다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결국 그것은 허상이었구나!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일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저 자신을 옭아매고 귀찮게 할 뿐이라고만 생각했던 가족들이 너무도 아름다워보인다. 이 소중한 걸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아름다움은 이미 내 손 안에 있었는데 왜 나는 여태 이상한 허상을 좇고 있었나. 그 사실을 깨달은 래스터 버냄에게 닥쳐온 감정은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보다는 ‘나는 이미 풍족하구나’하는 벅차오르는 감동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이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이가 있다. 바로 리키 피츠의 아버지 프랭크 피츠이다. 프랭크 피츠는 은퇴한 군인으로, ‘남자답고 정직한 삶이 아름다운 거다’라는 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매번 군대식의 윤리와 가장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이웃집 동성애자 부부는 남자답지 못하다며 혐오한다. 몇 년 전 아들 리키 피츠가 대마초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건 더러운 짓이라며 아들을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그는 사실 동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거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에 한참 어긋난 자신의 모습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극심한 충돌! 그래서 그가 한 선택은? 바로 폭력이었다. 동성애자를 모욕하고, 엇나가는 아들을 피가 날 정도로 폭행한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이 가장 심하게 충돌했을 때, 이웃집 남자 래스터 버냄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수치스러운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그는 래스터 버냄을 살해하기까지 한다. 허상뿐인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도, 타인도 해칠 뿐이다.

 

래스터의 죽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에게 질문해본다.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좇고 있었나?


나는 지금 2023년 한 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큰 고민에 빠져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호기롭게 영화를 한다고는 했으나 대체 어떻게? 내 이상은 영화 현장에서 능수능란하게 일을 해내는 건데, 나는 실제 현장을 나가본 적이 없으니 도저히 내 이상처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이상을 따라가자니 미래가 막막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나는 꽤 가진 게 많았다. 시간도 있고, 여기저기 써먹을 재능도 좀 있고, 함께 있어줄 친구도 있다. 시나리오를 쓰려면 그냥 쓰면 되는 거고,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일단 가서 배우면 되는 거다. 한 해 동안 영화인으로서 이룬 게 전혀 없다고 해도 뭐 어떠랴. 작은 거 하나라도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무언가를쌓아가면 그만이다. 나에게 써먹고 발전시킬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그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함’이라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일을 나가면 빠르게 배워서 전문가처럼 일을 해내야 하고, 학원을 가면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으며, 시나리오를 써도 처음부터 대작을 써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아름다움을 좇을수록 나는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기는 커녕 막연한 두려움만 가진 채 내 인생을 외면하게 되었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조차 돌보지 않게 되어버렸다. 허상뿐인 아름다움은 나의 존재마저도 허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를 본 지금, 더 이상 허상을 좇기보다는 실제로 내가 가진 것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속에서 나의 다음 행선지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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