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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동 세미나 6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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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회색인 작성일18-07-09 06:37 조회1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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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의 여정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후기를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어쩌다가 시몽동 세미나를 하게 되고 이렇게 후기까지 쓰게 됐을까? 하는 엉뚱하지만 중요한 물음을 내 자신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시몽동 세미나를 하게 된 관계의 여정은 주로 독서(공부) 했던 책들을 중심으로 보면 크게 3단계로 나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자발적으로 철학을 공부(?)했던 대학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의 시대라 불려졌던 80년대와 90년대를 대학에서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에 대한 책들을 접하게 됐고 당장이라도 바뀔 것 같았던 변혁의 분위기와 몰락의 기운을 연이어서 체험하면서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마르크스와 무관한 낡은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면서 혹시 세계와 나를 분리시키는, 대상과 주체를 분리시키며 바라보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분법적인 시각이 흔히 말하는 이념의 몰락을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지금에 와서야 생각하게 됩니다.

세미나에서 개체화 이론을 통해 관계의 존재론을 역설한 시몽동과 내부 없는 순수 외부인 물질세계와 외부없는 순수 내부인 심리세계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는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세계를 비판했던 메를로 퐁티를 접하면서 그때 조금만 더 내가 역동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마르크스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그때 공부했던 나의 인식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임^^)

두 번째로 장자책을 읽었던 시기입니다.

대학 졸업후 몰락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나름 상실감으로 방황했던 시기에 접했던 책이 여러분도 잘 아는 장자라는 책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장자라는 책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수 있는 책이지만, 현실주의나 현세주의적인 입장에서 장자를 읽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물을 하나라고 보면서 차별과 대립을 지양하고 노니는 경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통쾌합니다.

분리하면서 그리고 차이를 생산하면서 접속하는 시몽동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봅니다. 동일성으로 환원하는 방식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시몽동의 철학과 차이의 철학이라고 불리워지는 들뢰즈의 철학은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소설가인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었던 시기입니다.

최근의 시기라고 할수 있는데, 사실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카프카의 소설들에서 너무나도 낯선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해석하면 내 자신이 너무 익숙하게 살아 왔던게 부끄러웠습니다. 당연한 일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인정하며 물음표 없이 살아왔던 내 인생을 카프카의 소설들은 반증하고 있었습니다.(난 철학이 없거나 부족했습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족하지만 철학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제가 시몽동 세미나를 하고 공부(?)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기술한 이유는 사람들마다 관계의 여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사실 처음에는 사유의 여정이라고 했다가 관계의 여정이라고 변경한 이유는 세미나 내내 의식의 늪에서 벗어나오려고 의식적으로(?)노력한 발로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국 세미나를 하는 목적이 시몽동을 이해하는게 목적이 아니고 우리 각자의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관계의 여정을 각자가 잘 수행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 “현장 스케치시몽동 세미나 6주차

연역적 방법을 사용해 우주적 질서를 이야기한 스토아 학파와 귀납적 방법으로 원자를 이야기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공통점은 우연적인 마주침으로 원자라는 개체를 만드는 에피쿠로스나 목적에 따라서 우주적 질서를 만드는 스토아 모두 퍼텐셜에너지가 불가능 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은 각각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냈고 어느정도는 내부에 변환적 사유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가 나이듦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요^^

나이듦은 다르게 관계 맺는 양태를 갖는 것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세포가 바뀌는 것도 생성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암세포를 예로 들며 소통과 관계 맺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포가 달라져도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생성과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볼수 없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변환이란 관계와 관계간의 관계를 맺는것이며 물새가 바다에 앉을 때 그리고 수영할 때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의식의 힘으로 혹은 계산으로 사람이 걷거나 새가 바다에 앉거나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수영을 예로 들면 들뢰즈는 나의 구조와 바다의 구조 사이의 관계의 관계 맺기라고 말했으며 자연스럽게 들뢰즈가 말한 관계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광전효과를 통해서 물질의 입자로서의 성질과 파동으로서의 성질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야기하였으며 중요한 것은 입자는 전자와의 상호관계(문턱값)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과학과 믿음사이 그리고 철학

시몽동 철학은 어렵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의 글보다 어려운 이유는 화학결합,전기분해,광전효과,전자기장과 전자기파이론,양자역학,상대성이론,물질파이론 등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더불어 이에 대한 시몽동 자신의 인식론적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인데요,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세미나 중간에 시몽동이 믿으라면 믿어야지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기도 합니다. 과학과 믿음을 어떻게 구분하며 잘못하다간 맹목적인 추종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그만큼 시몽동의 책에서 인용되는 과학적 사례들이 전문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철학자들이 과학을 근거로 삼으며 자신의 철학을 개진합니다. 과학적이지 않은 철학자는 거의 없습니다.그만큼 과학은 철학의 근거가 되며 중요합니다.

근영샘이 책을 읽을 때 자아가 작동되지 않는 묘한 경계지점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배치가 재조정되는 느낌이라고 합니다.마치 내가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물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의식의 힘으로 책을 읽지 않고 책과 물질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고 시몽동 책을 읽으면 어떨까요? 시몽동 책과 나 사이에 과포화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자연스럽게 책과 나 사이의 분자 운동에 내 몸을 맡겨 보려고 합니다.

단 한번도 책을 읽으면서 과포화 상태를 만들지 못한 나의 나태함과 무능력함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책을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좋은게 아니라면서요? 마치 많이 먹어야 배설이 잘되는게 아닌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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