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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세미나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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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제 작성일21-07-07 22:28 조회11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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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세미나 8주차 후기입니다. 이번 주부터 육식의 종말3주에 걸쳐 읽습니다. 첫 주에는 소에 대한 역사를 중심으로 보았는데요. 이번 주부터는 각자 책 내용을 나눠 맡아 정리하고 질문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인류가 소를 어떤 방식으로 대해 왔으며,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그 출발은 고대에서부터 신성한 존재로써 다뤄지던 소에 대한 이야기부터였습니다. 어떻게 소가 신이 되었을까요? 이 부분을 생각해보니, 요즘 청용(청년-용맹정진)에서 읽고 있는 야생의 사고가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에는 무질서를 질서화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필연성(인간은 알 수 없는)을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구조가 있는데요. 육식의 종말에서 보이는 소의 신성화도 비슷하게 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질서를 보이는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 소를 상징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질서를 잡으려는(정리하려는) 사고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저는 일단 무질서에 대해 공포를 가지는 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은이 쌤의 불교적 관점에서 원인을 단선적으로 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하나의 상황이 있더라도 원인은 단 하나가 아니며, 해석 또한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신성화된 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소에 대한 시선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는 현재까지도 영향을 준 부분도 있었는데요. 바로 유목민들입니다. 그들 내부에서도 소를 보는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큰 영향을 준 것은 소의 자본화를 일으킨 전사 계층의 관점입니다. 쌓아 가질 수 있는 재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의 축산업은 대부분 정주민들의 것이 되었지만, 그 원인 중 일부는 유목민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주민과 다른 유목민의 사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는 방식을 보면 정주민이지만, 자본이라는 것을 쫓아다닌다는 면에서는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본 유목민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죠. 반면에 스스로를 정주민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요. 무언가에 매여서 살아간다는 지점에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갈망하게 되는 자본이라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면도 있긴 하지만, 결국 자본을 쌓는 마음에 묶여있다는 점에서는 정주민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방식의 유목도 가능한 듯합니다. 가령 매이지 않고 산다는 것자체에 중심을 두면 어떨까요? 물질적으로 이동하지 않으면서 살더라도 유목하기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정주와 유목에 집중해보다가 들뢰즈-가타리까지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육식이라는 점과도 연결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육식이 일으키는 문제들을 보고 해결하려면 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주의 방식으로는 육식 문제를 풀어가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조금 다른 방식, 유목의 방식으로도 육식에 다가가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유목 이야기 다음으로는 현대와 바로 직결되는 역사입니다. 정확히는 축산의 역사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이것은 단순히 동물을 기르는 것이었던 목축에서, 좋은 지방질을 얻기 위해 작물 농사와 연계된 동물 사육이라는 축산이라는 방식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역사를 말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욕망이 지나치게 작용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식민지 대부분을 소를 키우는 것에 사용하거나, 지방질이 가득한 소고기를 희망하거나, 그러한 욕망 때문에 사람이 죽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육식을 선호하게 된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짧고 굵게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식민화를 통해 목축을 하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현재까지 권력을 잡습니다. 또한 지방질 많은 고기를 욕망한 것이, 현재의 소고기 품질 등급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주민과 버펄로를 죽이고 밀어낸 후 이루어진 서부개척 및 축산은 기이한 느낌마저 있습니다. 어째서 그 정도까지의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까 질문이 올라올 정도입니다. 세미나 후반부에는 이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요. 너무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 것 같아서 한 가지를 꼽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디언들을 나쁜 존재로 상정했을 수도 있고, 총으로 만나게 되는 다른 존재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고, 살상의 실행자와 명령자가 다른 체계를 가졌다는 것도 있습니다. 또한 자아가 강할 때 타자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을 움직이는 크고 작은 여러 원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미나 초반에도 잠시 나왔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육식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확실히 요즘 육식에 대해 생각하면 어딘가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육식에 새로운 관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은 2주간 읽고 생각하며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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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끈끈이대나물님의 댓글

끈끈이대나물 작성일

유목의 방식으로 육식의 문제를 풀어본다?! 멋진 화두네요!!^^
용제샘은 '유목'이라는 삶의 양식에서 어떤 개념을 포착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용제샘이 풀고싶은 유식의 문제란 무엇인지도요!

이 두 가지가 구체화되면
'유목의 방식으로 육식의 문제를 풀어보자'는 비전을 더 힘있게 밀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재훈님의 댓글

재훈 작성일

동물을 기르는 목축에서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한 목축으로, 그 과정에서 야기되었을 살육들과 파괴가 같이 연상이 되네요.
내가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힘을 쓸 때 'A는 중요하고, B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내 안의 이분법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원주민들과 백인들, 버팔로의 사례를 읽으면서 듭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참상을 알면 금육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헌데 저는 고기를 참 좋아하는데요. 어떻게 사람과 동물, 자연이 상호보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은 이상향인 것일까요. 『육식의 종말』의 저자는 어떤 해결책 혹은 대안책을 얘기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