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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리스트> 잘읽자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은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윤리가 자기로부터 근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프로그래밍 된 세계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 윤리를 만들까?”
선생님께서는 윤리가 자기로부터 근거한다는 건 자기를 원인으로 두고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윤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장에 있는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원인이고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해자도 원인이 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이 장에서 부분적인 원인으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모든 것의 출발을 나에게 두고, 나를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해야 이 현장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어요.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이를 악물고 내가 왜 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는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만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프로그래밍 된 나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은 다 잡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어요. 모든 것들은 섞여 있는 잡종의 상태이기 때문에 나를 단일한 존재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래서 내 안에는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나의 모습도 많이 있어서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를 나로 생각할 것인가? 겹겹이 되어있는 마음의 경계를 한 스텝씩 넘어가면 끊임없이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그곳에 올라가서 생각하는 나를 지켜보고, 한 단계 더 올라가서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또 볼 수 있어요. 내가 프로그래밍 된 세계의 흐름 속에 있으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한 발짝 바깥으로 나아가서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나의 모습도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51~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위대한 지성인들은 모두 회의가다.’였습니다. 회의 반대편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니체는 왜 확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근본적인 모든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신할 때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 위치에 갇혀있다는 점에서 감옥과 같습니다. 이러한 맹목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서 다른 것을 고려할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자기 아래, 뒤, 옆에 있는 500가지나 되는 확신을 보아야 한다고 해요. 선생님께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다른 눈과 귀를 가진 회의가와 불교의 천수관음(손과 눈이 1000개인 관세음보살)을 연결해주신 점이 재미있었어요. 여러 가지 확신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그러한 강한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의가의 존재 근거이자 존재의 힘인 위대한 정열, 이것을 수단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신앙을 필요로 하고, 어떤 무조건적인 긍정과 부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약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인간, 모든 종류의 ‘믿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인간이라고 했으니, 위대한 정열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신, 부모님, 선생님, 신부님, 멘토 등등에게 의존해왔어요. 나보다 더 현명할 것이라고 확신한 존재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게 옳은 것이라 믿었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께서 던져주신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어요. 니체가 “무서운 곳에서 살래? 더러운 곳에서 살래?” 물어보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저는 <안티크리스트>를 읽기 전에는 “둘 다 무서워. 차라리 죽을래.”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마음속에서 이미 강자가 되었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무서운 곳에서는 내가 강한 사람이 되면 더 이상 무섭지 않을 것이고, 더러운 곳에서는 종일 청소를 하면서 살면 되니까요. ㅋㅋㅋ 여기서 더러운 곳이 비위생적인 장소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나까지 정신적으로 병들어 약자가 되거나 부패할 수 있는 장소를 말씀하신 것 같지만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제출하면서 후기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안티크리스트에서 고른 나만의 한 문장은 “정신의 강함, 정신의 힘과 정신의 넘치는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서 입증된다.”입니다. 이유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하나의 확신만 하고 좌절하고, 또 하나의 확신을 하고 좌절하는 반복된 삶을 살아온 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확신하지 않고, 실눈을 뜨면서 “맞아?”라고 고민해보는 회의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정한 안티크리스트의 부제목은 ‘지금 여기, 내 삶의 주인 되기’입니다.
잘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근영 선생님께 겹겹이 무한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