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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오 세미나 S.1] 1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김성필 작성일23-03-08 23:56 조회12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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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오 세미나 s1 - 1주차 후기


곧 2030 고전학교가 개강함에 따라 바빠질 나의 일정까지 고려한 섬세하신 반장님들 덕분에 첫 후기를 맡게 되었다. 세미나 첫날인 만큼 자기소개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위대한 정오 세미나는 니체 전집을 읽는 큰 프로젝트임에도 총 열두 분께서 참여해주셨다. 이날 한 분은 참석하지 못하여 열 한 명이서 진행을 했다. 세미나 참여 인원은 주부, 백수, 직장인, 대학생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이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 사연들도 각양각색이었다. 니체가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 그 점을 배워보고 싶으신 분, 업무 특성상 보고서를 많이 접하다 보니 텍스트에서 필요한 정보만 추출하는 습관이 생겨서 책을 읽으며 텍스트 전체를 이해하는 힘을 키우고 싶으신 분, 일요 대중지성 프로그램에서 니체의 저작인 <도덕의 계보학>을 낭독하며 니체와 강렬한 만남을 경험하셨고, 본인의 집 책장에 니체의 전집을 꽂아 넣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신 분 등등 다양한 사연들로 세미나에 찾아 와 주셨다.

오티에서는 이번 세미나가 '읽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읽기 근력을 키우는 시도라고 했다. 니체라는 한 사람의 전집을 읽는 프로젝트인 만큼, 대상을 분석하는 느낌이 아닌 사람을 만나듯이 천천히 겪어보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1주 차 세미나는 니체의 성장환경 및 배경과 그의 철학의 변곡점들을 진지하게 기록한 레지날드 J. 홀링데일의 책 <니체, 그의 삶과 철학>을 1~152쪽까지 읽어 온 뒤 진행되었다. 토론에 들어가기 전엔 강독이나 강의 없이 두 시간을 서로의 말로 채우는 게 어렵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막상 토론이 진행되니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토론은 '설명이 필요한 삶과 괴로움'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 '자녀의 방 청소'라는 키워드까지 이르는 종횡무진의 토크를 이어가는 조원들과 니체의 전체적인 삶의 흐름을 짚어가며 진행하고자 하는 반장님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토론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해본다.


토론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성실함'에 대한 부분이었다. 니체는 열네 살, 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오전 4시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하루 중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1시간이었다)을 소화하면서도 친구 두 명과 함께 '게르마니아'라는 문학과 음악 동아리를 결성하여 많은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로도 그가 공부한 문헌학의 특성상 수많은 서적을 읽고 많은 글을 써야 하고 질병과 싸우면서도 집필활동을 놓지 않았던 그를 떠올리며 우리는 자연스레 니체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니체,그의 삶과 철학>에서 니체는 '독일 철학'처럼 딱딱하지도 않고, '교양 있는 철학자'처럼 아마추어 같지도 않다고 말하면서, 니체는 성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독일 철학의 결점은 (중략) 보편 교양의 결여, 소름 끼치는 성실함 등과 같은 전문가가 가지는 결점과 같다. 반대로 교양 있는 철학자의 결점은 (중략) 지적 정직함의 결여, 철학이 없는 사색, 비일관성 등과 같은 아마추어가 가지는 결점과 같다. (중략) 니체는 이러한 정신의 두 유형과 표현의 두 형식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다. 그는 심오하되 모호하지 않다. 그는 훌륭한 양식을 목표로 하되 그것을 훌륭한 사유와 일치시켰다. 그는 진지하지만 성실하지는 않다." (니체,그의 삶과 철학, 북캠퍼스, 35쪽)


이 책의 작가는 왜 니체를 성실하지 않다고 표현한 걸까?

위 인용문에서 성실함은 앞에서 우리가 니체의 포르타 생활 등을 놓고 그의 생활방식에 대해 얘기했던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진지하지만 성실하지는 않다"는 니체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진지함을 갖췄지만, 예술가적 기질 또한 갖췄으므로 독일 철학의 결점인 '보편 교양의 결여, 소름끼치는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 '성실함'은 무엇이 다른가? 토론 중 지완샘이 나눠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자신이 하기 싫은 것에 게으른 것은,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것일 수 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 보다, 자신의 특성과 욕망에 맞게 사는 것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잘 사는 것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성실함을 '사회적 성실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으로 구분 지어 살펴본다.


먼저 '사회적 성실함'이란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칭찬인가? 어떤 일을 주어진 규칙에 의해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는 사람에게 하는 칭찬이다. 어떤 일을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하려면 규칙에 대한 의심이 없어야 한다. 그 규칙이 완벽하다고, 하다 못해 이행해도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 '사회적 성실함'은 이미 구축된 규칙에 맞게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보다는 타자에 의한, 타자를 위한 규칙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 '사회적 성실함'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지하지만 성실하지는 않다"에서의 성실함도 타자에 의한 성실함을 말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은 언제 발휘되는가? '사회적 성실함'과는 반대로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규칙을 따를 때 발휘될 것이다. 니체가 학교 일정 외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창작을 했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학생이라는 본분을 위해 수행해야만 하는 것 외에, 니체 자신의 고양감과 예술성을 표현하기 위한 규칙과 실천이 바로 게르마니아 활동이었다. 또한 니체는 포르타에서 학문적 비평의 원리를 익힌 뒤 그동안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무비판적 관점으로 대하던 성경을 학문적(학문적 지식과 역사학적 비평의 모든 자료를 동원하는 회의적인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다. 니체가 성경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회의적인 방식으로 모든 문헌을 대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규칙(혹은 본분)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은 어떤 사람의 덕목인가? 타자로부터 부여된 규칙(성역에 놓인 성경)을 의심할 줄 아는 사람. 관습, 관행(타자)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표현(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을 니체가 다른 책에서 말한 내 안의 또 다른 거대한 나, 근원적 생명의 힘을 의미하는 '위대한 정열'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쉬지 않고 일하는 AI의 시대가 도래하며 이젠 취업시장에서 성실함이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2030 고전학교.s1에서 '성실함이란 삶에 리듬을 부여하는 힘'이라는 곰샘의 말씀은 내게 성실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성실함을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것과 같이, 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하루의 시간에 굴곡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취업시장과 자본의 논리에서 성실함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삶의 영역에서의 성실함이란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데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또! 이번 세미나를 통해 성실함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 맹목적인 부지런함은 성실함이라고 할 수 없다. 나아갈 길을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달리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성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방향이 내 안의 있을 거대한 나를 만날 수 있는 방향인지 계속 살펴보고 질문하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 궤도를 틀어 나가는 것, 안주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성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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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보라보라님의 댓글

보라보라 작성일

성실함을 키워드로 니체의 모습을 그려주시니,
상상속 니체가 더 생생해지고 통통해지는(?) 것 같습니다!

성실한게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어떤 성실함인가!
그 성실함이 내 삶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번주에 읽은 부분 중에서 '자기 극복' 그리고
'복종'과도 연결되는 것 같고요.
신(외부, 혹은 타자)에게 복종할 것인가!
자신에게 복종할 것인가! ㅎㅎㅎ

한편으로는 타자의 명령을 따르는 성실함은
타자를 상실하는 순간 길을 잃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신의 죽음 이후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요!
그래서 니체가 자신에게 힘에의 의지를 부여하라고,
자신을 조형하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성실한(!)' 성필샘의 후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

이하늘님의 댓글

이하늘 작성일

성실함을 두 가지 측면 '사회적 성실함'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으로 규정하니
명료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ㅎㅎ

확실히 맹목적으로 부지런한 게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을 매일같이 이행해나가는 것,
이것이 니체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성실함'이었던 것 같네요.

'성실한(?)' 성필쌤의 후기 잘 읽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