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세미나 통합 게시판입니다.

기획 세미나 기획 세미나

대승 불교와 현대 과학 시즌2 - 9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모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7-16 17:43 조회242회 댓글2건

본문


어슐러 K. 르귄의 <어둠의 왼손> 전반부는 우주행성연합인 에큐멘의 특사인 겐리 아이가 양성인이 사는 겨울 행성 게센에서 자신의 임무(게센을 에큐멘의 84번째 행성으로 영입하는 것)를 수행하고자 애쓰는 과정을 그렸다. 그 안에는 본격적인 사건보다는 특사로서의 게센에 대한 면밀한 사회문화적 관찰이 주를 이룬다. 우리의 토론 역시 우리를 새로운 상상력으로 데려가는 르귄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먼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양성인이라는 게센인의 특징이며, 르귄은 이것이 전쟁이 없는 세계를 구상하다 나오게 된 설정이라고 한다. 즉 남성성이 없다면 전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결과인 셈인데, 정말 그럴까.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남성성은 어떤 특성을 말하며 왜 그 특성이 전쟁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게센인들은 보통때는 남녀를 한 몸에 지니고 생활하다 한 달중 특정기간 동안만 상대에 따라 남녀 중 한쪽이 발현돼 짝을 짓고 여성인 쪽이 임신을 한다. 이렇게 되면 부모나 자녀의 구분 역시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이렇게 낳은 아이들 역시 공동육아로 키워지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소유욕 역시 크지 않으며, 따라서 축적이나 계승에 대한 욕망 역시 마찬가지리라 생각된다.


이들은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양성인의 특성 때문인지 조직적인 국가 형태라기에는 좀 더 원시적이고 파편화된 개별적인 부족국가를 이루며, 다양한 암투와 경쟁은 있을지언정 한번도 대량살상의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 결국 누구라도 임신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인 혹은 경험적인 여성(어머니)이라는 것은, 자기를 입증하는 수단으로서의 남성의 정복욕 내지 호전성을 잠재울 수 있는 조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서 혈연적 욕망에 의한 축적이 없는 세상에서는 국가라는 강력한 위계질서가 성립할 수 없지 않을까. 결국 자신이 누구라는 생각이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낳고, 그 욕망이 가장 크게 발현되는 형태가 남성성이며, 그것의 가장 강력한 사회조직이 국가라는 연결로 작가의 구상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아직 확실한 인격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소설의 화자, 겐리 아이에 대한 추측 역시 다양했다. 서구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상황을 이입하여 선한 의도였지만 결국 식민지배의 길을 열어준 초기 선교사나 인류학자의 역할을 떠올려볼 수도 있고, 조직의 의도를 충실히 믿고 시행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예상치 못한 연쇄작용으로 인해 원래의 목표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르귄은 전반부의 적지 않은 분량을 미리 안다는 것의 무의미함을 설파하는데 할애한다. 겐리 아이가 만난 예언자는 잘못된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언을 한다는 알쏭달쏭한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대안일까. 하지만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이미 답이 필요 없는 지혜가 갖춰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보면 예언자들의 임무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데 있다는 말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얘기 나눈 소설의 전반부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결정적 단서보다는 배경 이해에 집중한 느낌이다. 사실 결론을 알고 싶다면 소설의 맨 뒤를 펼쳐 겐리 아이의 정체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존재의 직접적인 얘기보다는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그 존재를 가늠해가는 작업이, 어쩌면 그 애매하고 지난한 시간 자체가 소설의 의미일지 모른다.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일은 내 안에서 삭제되고 잊혀진 잠재성을, 잊혀진 감각을 일깨우는 일과 일치할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날파리의 성적취향을 이해하는 것과 내 안의 양성을 꿈꾸는 일이 크게 다른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것처럼.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케메르 기간 동안 케메르 방에 들어서면 (거참 공공연한 성생활입니다만) 그냥 아무하고나 눈이 맞는가?란 매우 철학적인 문제에서 날파리로부터 답을 얻었죠. 날파리도 취향에 따라 다리를 뗀다는 근영샘 말씀.. ㅎㅎ 덧붙여.. 게센인의 한달의 한번의 공공연한 성생활은 많은 것인가 적은 것인가에 대한 버라이어티한 시각차... 역시 SF는 결코 공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무엇보다 현실반영장르랄까... :) 덧덧붙여.. 게센 예언자들에 의하면 나쁜 질문은 우리를 나쁜 미래로 데려간다 고로 질문을 잘하자! 역시 인상적이었죠.

코난님의 댓글

코난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아, 웃고 즐기느라 기억에서 놓친 부분들 보완해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같이 공부하는 데서 오는 든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