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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s-2 / 2022.08.12 / 『황금가지』 22장 언어 터부 / 이름, 생명의 무게 / 미리내
이름, 생명의 무게
우리가 새로운 누구를 만나 인사를 나눌 때는 흔히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합니다. 타인에게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름에는 그 사람 혹은 사물과 관계 맺었던 기억들이 담기어 이름을 떠올림으로써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 어떻게든 이름을 붙이고자 합니다. 심지어 이름을 몰라도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름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고 이름값을 하는 것도 중요한 때 이름에 강력한 주술적 힘이 걸려 있고, 이름을 부름으로써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이해가지 않습니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1854.1.1 ~ 1941.5.7)가 『황금가지』에서 말하는 많은 터부들 중에서 ‘이름’에 걸려 있는 터부는 주술적 강력함과 함께 혐오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원시인들은 존재론적 의미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왜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사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았던 원시인들은 사물과 이름이 본질적이고 실체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이름 자체를 자기 생명의 일부라고 여겼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신체의 일부를 떼어 내어 멀리 보내는 것이 되어 생명의 에너지를 덜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한 원시인들이 어느 한 곳에 특정된 것이 아니라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섬들, 중아오스트레일리아 여러 부족, 고대 이집트,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까지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원시인들, 고대인들은 이름에 신성을 부여하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기에 부를 만한 이름을 필요로 했습니다. 절대 비밀로 해야 하는 이름은 특별한 의례, 성년식이나 결혼식 때 불리고 평소에는 별명, 관계명 등으로 불렸습니다. 만약 이름 부르는 소리를 악령이 듣는다면 그 사람은 해를 입게 될 것이고 특히 악령의 공격에 취약한 어린아이들의 이름은 절대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과거 손이 귀한 집 아이들에게 개똥이, 못난이라고 했던 이유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름대신 불린 별명과 관계명은 주술적 힘이 미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입으로 직접 이름을 말하는 것에는 터부가 걸렸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 주는 것은 괜찮은 곳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관습에 대해 프레이저는 본인의 본명을 말하는 것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이 혐오감은 악령의 주목을 끌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주술적인 위해를 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주술적 힘이 본명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었습니다. 가족 밖에서는 이명(異名)이나 별명처럼 이름을 대신하는 이름뿐 아니라 누구의 아버지, 엄마, 이모, 삼촌 등과 같은 관계 명을 만들었고, 없는 애도 데려와서 ‘애 없는 아빠’로 불렸습니다. 혈연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 사이에서 이름 터부는 더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장인, 장모, 사위의 이름을 부르는 것 금지되었고 특히 여자는 시아버지를 비롯한 친족 남자 연장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이름과 유사한 음절, 강세가 들어간 말을 하는 것도 금기였습니다.
죽은 자의 이름에 관한 터부는 엄격하게 지켜지고 강제되었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망령을 불러내는 공포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슬픈 기억을 되살리기 싫은 본능적인 혐오감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포가 죽은 자의 이름을 기피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죽은 자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임시 이름을 쓰거나 그때그때 아무 이름이나 새로이 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의 이름이 동식물이나 물, 불같은 일상적인 사물과 일치하는 경우 일상용어들도 다른 말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말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언어의 변용은 원시사회의 역사의 전승을 근본적으로 단절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처럼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이름으로 상징합니다. 동양적 사상에서도 태어날 때 받은 이름(名)은 생명적 연결성으로 저승 명부(冥府)에 갈 때 불린다고 합니다. 사는 동안에는 이름을 대신하는 字, 號 등으로 불리며 살았다고 하니 한 사람의 존재적 가치를 담은 이름값이 참 무겁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