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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다송이가 원주민 덕후인 이유와 데이비드 봄 한 스푼
원시인들에게 주술은 일상적이었던 것 같다. 사냥이 잘 되기 위해, 농사가 잘 되기 위해,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술을 썼다. 현대인이 보기에 모형 인형을 만들어 해한다고 해서 저주하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거나, 바람을 호리병에 담아 필요 할 때 열어 쓴다거나 하는 행위들은 아무 논리도 없고 미신적이고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하다. 주술적 행위는 지역마다 모양이 달라서 더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다고 해가 뜨고, 바람이 멈추고, 비가 내리고, 사냥이 잘 되고, 질병을 고칠 수 있을까. 작고 사소한 행위로 큰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늘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이다.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서 독립 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건 만세운동과 암살행위가 독립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갔지만 그 어떠한 죽음도 우리나라 해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일본에 핵을 터트려서 어부지리로 해방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늘 허무했고 의문이 생겼다. 그럼 그냥 시간만 때우다가 가만히 있다 보면 독립이 되었던 것일까.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어나간 사람들의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의 명대사가 있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자주 국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강대국에 알리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나 애쓰는걸 보고 마음이 동해 미국이 일본에 핵을 터트려 줬을까. 아니다. 강대국이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나라의 해방을 도와줄리는 없다. 독립운동과 해방의 개연성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독립 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은 삽질이 아니어야 했다. 전지현의 대사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가 황금가지를 읽고 주술에 대해 생각하다가 독립 운동가들의 죽음이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주술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현대에도 주술의 원리는 아직도 충분히 존재하고, 그것도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힘들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술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가진 문제도 풀 수 있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술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1년간 나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들 때문이었다. 1년동안 이사를 3번이나 다녔다. 1년 동안 총 4번의 집을 바꾸었는데 그 이유는 이사를 간 집마다 방음이 잘 안되고 새벽에 잠을 안자는 이웃이 있었기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에 시달리다보니 곧잘 부정적으로 되고 쉽게 불쾌하고 의심하고 복수심을 가지는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부정적이었고 쉽게 불쾌해하고 쉽게 의심하고 쉽게 복수심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이런 감정을 가지며 살다보니 이런 감정을 유발하는 환경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나에게 주술을 걸었던 것이다. 지금 사는 곳도 방음이 안되고 새벽에 잠을 안자는 이웃과 서로 보복소음을 내며 싸우고 있지만 이곳에서 당분간 이사 갈 생각이 없다. 층간 소음을 겪으며 내 감정을 돌보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이게 층간 소음 환경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새로 이사 갈 집이 조용할 것이라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원시인들도 수렵 채집생활을 하다보면 늘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배고픔을 해소하기위해 먹거리를 매일 구해야 하고, 추위와 더위에 적응해야 하고, 잠을 자고 쉴 수 있는 곳도 수시로 바꾸어야 하고, 야생동물의 위협이나 자연환경의 변수에서 늘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멘탈을 잡는게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주술이다. 원시인들에게 주술은 미신적인 기도나 욕망의 투사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황금가지에 나오는 주술과 터부의 예시들을 보면 원시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매우 섬세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삶에 최적화된 상태로 가꾸었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기 위해 주술 행위를 하며 감정을 다듬었고, 잉여의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무언가를 터부시 하는 행위를 했다.
현대에도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람의 넋을 빼놓는 킬링타임용 콘텐츠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 등. 그런 것들에 홀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최적화된 삶으로 살 수 있도록 마음과 신체를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잉여 감정을 버리고.
다시 독립운동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독립 운동가들이 두려움에 떨며 만세운동과 암살을 계획하고 행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자주국가라는 자유로운 승리자의 감정으로 행했을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감정 에너지들이 조금씩 모여 독립, 해방이라는 큰 움직임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우연의 탈을 쓴 필연으로. 독립 후 국민들이 느낀 해방감은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조금씩 쌓아놓은 감정 덕분일 것이다.
최근에 앨비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앨비스는 무대를 하기 위해 과도한 약물을 복용했고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영화는 그가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해 경제난으로 계속 무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니라, 팬들의 사랑이 그를 무대에 오르게 했다며 팬사랑으로 미화했다. 그러나 주술을 이해하고 보면 앨비스의 무대를 열망하는 소녀팬들은 모두 주술사였던 것이다. 앨비스의 무대에 쾌감을 느끼며 계속 보길 원하는 작은 감정들이 모여 앨비스를 과다 약물 복용을 하면서까지 무대중독에 걸려 사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데이비드봄 다큐에 나오는 양자역학의 부분과 전체의 상호 연결성이 원시인들의 동종주술 모방주술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인다.
기생충에서 다송이가 원주민 덕후로 나오는데 이제야 다송이가 왜 그렇게 원주민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간다. 원주민은 자신의 삶을 최적화된 상태로 만드는 삶의 달인이었다. 다송이의 부모 이선균과 조여정은 잉여를 남기고, 그 잉여에 기생하는 송강호 가족이 있지만, 다송이는 아마도 원주민처럼 감정이든 생각이든 재산이든 필요한 만큼만 취할 것이다. 쓸데없는 감정이나 생각이나 재산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다송이가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치료를 받아 살 수 있을까. 죽었을까. 알 수 없다. 봉준호는 자본가가 가진 잉여의 순환에 회의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