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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북구의 ‘곡물의 어머니’와 ‘곡물의 아가씨’/2022.09.30/미리내
마지막 곡식 다발의 상징
프레이저는 45장 전체를 빌헬름 만하르트의 『신화학 연구』에 의존하고 있는데 데메테르라는 이름의 유래를 보리에서 찾았다. 곡물의 어머니인 데메테르가 밀과 보리 중에서 보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곡물의 어머니가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해 준다고 믿었다. 추수 관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사람들은 곡물의 어머니가 마지막에 수확하는 곡식 다발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타작을 할 때 곡물정령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곡물의 어머니를 때려잡는다고 말하거나 마지막 곡식 이삭으로 인형을 만들어 곡물의 어머니를 ‘곡물의 할머니’라고 부르고 물에 담그는 주술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북구의 사람들은 왜 마지막 곡식 다발에 의미를 두었을까?
마지막 곡식 다발을 베는 것에는 주술이 걸려있다. ‘할머니’를 얻는 것에 경쟁을 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지막 곡식 다발을 묶거나 베는 사람은 다음해 결혼을 하는데 배우자는 반드시 늙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곡식 다발을 ‘할망구’, ‘영감탱이’라고 부르기며 벤 사람도 묶은 사람도 조롱을 받는다. 슐레지엔 지역에도 마지막 곡식 다발을 ‘영감탱이’, ‘할망구’로 부르면서 갖가지 웃음거리의 소재로 삼는다. 스코틀랜드에서도 만성절(11월1일)이전에 수확한 곡식 다발은 ‘아가씨’라고 부르고 이후에 수확한 곡물은 ‘할망구(칼린,카를린)’이라고 불린다. 또 해가 진 다음에 벤 곡식 다발은 ‘마녀’라고 불렀으며, 액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수확하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꼴찌로 수확한 자는 늙은 여편네의 모습을 한 ‘농장의 기근’을 다음해 수확철까지 보관해야 했다. 이 공포에서 경쟁과 유희성이 생겨났다고 한다. 곡식 다발을 다른 농장으로 몰래 갖다두거나 ‘마녀’라고 불리는 곡식 다발을 향해 낫을 날려서 맞춰야 하고 쓰러뜨린 자는 맥주를 받기도 한다. (왜 곡물의 할머니는 기근이 되었을까? 이 기근을 다음해 수확철까지 보관해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농부들은 젊고 풍요로운 곡물정령의 화신인 ‘아가씨’는 소유하는 한편, ‘늙은 여편네’는 가능한 빨리 이웃에게 넘겨 버린다. 마지막 주인이 되는 농부는 곡물정령을 환대하기는커녕 푸대접한다. 왜냐 그는 ‘마을의 기근을 대비할’의무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확의 모든 모습은 풍요를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과 끝에 모두 감사가 걸려있다고 여겼는데 북 유럽의 수확 신화는 재생산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재생산도 풍요로 이어지겠지만, 가는 길이 섬세하다고나 할까? 어린 곡식 사이에 늙음으로 상정된 마지막 수확물을 섞어야 더 많은 생산을 한다거나, 새끼 밴 암말이나 암소 혹은 첫 쟁기질을 하는 말에게 마지막 수확 곡식을 먹이고, 마지막 곡식 다발을 묶은 여자가 다음해 아이를 낳을 것이며, 마지막에 차지하는 그 남자는 곧 결혼을 한다는 관념은 시작과 끝의 균형이 재생산을 낳는다는 주술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프레이저는 이것을 정령을 달리기 위함이 아니라 농작물에 필요한 비와 이슬을 확보하기 위해 ‘곡물 어머니’를 강물에 던지거나, 이듬해 풍성한 수확을 위해 ‘할망구’를 크고 무겁게 만들거나, 마지막 곡식 다발의 알곡을 봄철의 어린 곡식 사이에 섞어 뿌리거나, 가축들이 잘 자라고 새끼도 많이 낳도록하기 위해 마지막 곡식다발을 나누어 먹이거나 하는 적극적 주술적인 관습이라고 말한다. ‘곡물의 어머니’와 ‘곡물의 아가씨’는 봄철 관습과 추수 관습이 만들어낸 대칭적 사고의 기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