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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s3-뱀 의식-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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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리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2-02 04:43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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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학s3 / 뱀 의식, 아비 바르부르크 /2022.12.02./미리내

 

인류의 생존투쟁은 진행형

 

아비 바르부르크는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의 삶에서 발견한 여러 이미지를 통해 인류의 동일성과 불멸성, 양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그들의 주술적 행위에서 인류의 존재 이유와 우주론적 세계관을 발견하고자 했다.

 

아비 바르부르크는 문명의 공허함에 역겨움을 느꼈기 때문에 푸에블로 인디언의 삶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나는 문명의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나 반추해 보았다. 공허까지는 아니어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전자기술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뒷걸음치며 반사적으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되살아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에 대해 20~30대에는 경이로움을 느꼈는데 이제는 불편함과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연과의 투쟁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양극성이 기술 문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로 변신함으로써 자연을 주술적으로 제압하려는 의지가 지금의 인류에게는 더 기계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류의 실존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비 바르부르크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춤과 조형으로 나타나는 예술에서 찾고자 했다. 특히 오라이비의 뱀춤은 인디언의 유희와 예술은 혼돈에 맞서 질서를 유지하려는 절박한 시도의 증상이자 증거라고 말했다. 푸에블로족은 사물의 존재 근거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사물의 원인으로 변모시켜 자연적 사건을 이해하려고 한다. 사물과 비교하고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었다. 기억은 살아 있는 적에 맞서는 생존 투쟁을 위한 방어 수단으로 이해된다. 기억은 이미지를 통해 대상화된다. 이미지화된 원인에 대한 표방은 동물과 인간을 오가며 변화하는데 이 변화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춤과 음악이었다. 이들 부족의 뱀춤이 존재 자체를 전유하는 예이다.

푸에블로족은 모권제 사회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보호가 없다. 친자 관계를 확인할 인과적 사유가 불가능하다. 이 불안이 토테미즘의 토대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할 동물 아버지가 필요했고 동물 아버지는 아이가 자연과의 투쟁에 필요한 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기에 두려운 존재가 필요했다. 두려운 존재가 부모로 정해지면 두려움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주술적 사고가 토테미즘의 토대였다. 즉 토테미즘은 기억의 주관적· 공포증적 기능으로 생겨났다고 봤다. 이런 방어적 환상은 적대적이라는 생존 투쟁의 근본적 행위를 낳았다. 적의 모든 힘을 파악해서 더 강력한 방어 수단을 취하려는 시도가 의식의 경계 아래에서 일어났다. 공격과 방어의 의지는 더 강해지면서 공격적 성격이 존재들 간의 관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상상을 통해 다른 존재와 결합해서 동물의 특성을 얻고자 했다.

 

비극의 역사

이 강박적인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를 기술에서 찾고 있다. 기술은 도구를 다루는 것이다. ‘다룬다는 활동은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이다. 이 활동을 통해 인간은 유기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손은 무기물인 도구를 받아들여 자아를 비유기체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직접적인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적인 비극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왜 비극이라고 말했을까? 한계를 가지지 않는 기술의 질주, 파괴적인 힘을 가진 거대 기계와 과학이 인간의 영혼조차 수치화시키는 비극을 예견했을까? 일어나기를 바라는 미래의 사건을 상징적인 모방술로 미리 붙잡는 것이 주술이라고 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가 가면을 쓰고 주술적 힘을 부여받아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고자 했다면 기술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우리는 어떤 주술적 힘으로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려고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기술이 왜 정신적 거리두리라고 말했을까?

토테미즘과 터부가 연결과 분리의 관계라면 손과 기술의 연결과 분리와는 어떻게 다를까?

신화적 사유에서 적대는 왜 부정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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