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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의 역할
트릭스터가 시간이라면 0시, 새벽12시다. 왜냐하면 새벽 12시는 어제도 아니고 오늘도 아니다.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동시에 어제이기도 하고 오늘이기도 하고, 오늘이기도 하고 내일이기도 하다.
트릭스터는 맥락이나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기호학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 쫓는 자가 쫓기는 자가 되고, 쫓기는 자가 쫓는 자가 된다.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놀리기도 하고 놀림 받는다. 하지만 놀림을 받거나 사기를 당해서 슬퍼하거나 억울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트릭스터는 존재를 변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기를 당했거나 놀림을 받았다면 존재는 다른 무언가로 바뀌고야 만다.
트릭스터는 대놓고 나를 괴롭히는 천하무적 악당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당하게 만드는 고도의 사기꾼이다. 내가 사기 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기를 당하는 중이었다던가 - ‘코요테 등에 안장 앉히기’처럼 토끼들을 잡아먹기 위해 토끼 소년을 등에 태우고 토끼 연회에 간 코요테는 결국 몸에 피가 나도록 달리며 토끼소년의 이동수단이 된다. - ‘너무 궁금해하지 마’에서 코요테는 담배를 뺏기 위해 토끼의 자루를 빼앗아 열다가 수많은 벼룩에 공격당한다. 트릭스터를 유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의 존재는 존재 자체를 향한 연민과 관용을 요구하며 또 필요로 한다. 트릭스터는 삶의 찬미자이며, 삶의 찬미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항하여 반격함으로써 공동체는 그 자체의 복원력과 보호능력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40
인디언들은 트릭스터라는 삶의 변수를 싫어하거나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기꺼이 긍정하며 자기 변환의 근거로 만든다. 존재나 공동체는 트릭스터를 거치며 복원력과 보호능력이 향상된다. 대항하여 반격함으로써 트릭스터를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대항하여 반격하면서 당하고 또 당하고 결국 바뀌는 것은 나다. 결국 자기 변환을 통해 또 다른 자기가 된다.
좋은 것이 나를 바꿔주지 않는다. 좋은 것은 자아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 나쁜 것이 내 습을 바꾸고 자아를 해체시킨다. 그래서 나쁜 것이 좋은 것이 된다. 트릭스터의 원리이다.
내게도 층간소음이라는 강력한 트릭스터가 있다. 보복소음에 보복소음으로 대항하고 반격하면 할수록 더 큰 층간소음이 울려 퍼진다. 결국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나다. 집에서 절간처럼 조용하고 엄숙하게 살게 되고,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무언갈 해야만 할 땐 계획을 세워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쓸데없이 배달 음식으로 과식하지 않는다. 집에서 움직이는 모든 행동이 소리를 유발하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하기 위해서 수도승처럼 고요하게 살려고 한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층간소음에 취약한 집은 살인충동과 방화충동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분노조절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삶을 단순화시키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훈련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사는 가고 싶다. 날 풀리면 반드시 갈 것이다. 귀찮지만 또 다른 변환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