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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세미나
인류는 어떻게 '잘' 살고자 해왔을까? 그 다양하고도 찡한 시도들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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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세미나s2 8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소보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20 07:26 조회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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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류학 세미나 (늦은,,) 8주차 후기입니다!

 

3주에 걸쳐 읽은 <앎의 나무>가 끝이 났습니다. <앎의 나무>는 무척 어지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책이었는데요. 신경생물학자인 저자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겨온 것들, 이를 테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같은 생물학적 삶과 앎의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에셔, <손을 그리는 손>

 

인식한다는 건 저기 바깥에 있는 바로 저세계를 표상(representation)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존재하는 를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걸까요?


수업에서 를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유아론과, 객관 대상이 존재하고 이를 인식하는 표상주의 모두 있다는 확실성 모델에서 출발한 개념이라는 걸 짚어보았습니다저자들은 이 확실성 모델을 깨는 작업을 책에서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말하거나 하는 삶의 모든 과정들은 타인과 공존하면서 한 세계를 산출하는 작업이라는 것이죠.


저는 제 밖의 객관 대상이나 세계,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확신해온 것에는 형태를 가진 것을 확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형태는 분명 존재하기에, 내 몸이든 내가 마주하게 되는 사물이든 그것이 있음을 의심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형태가 유지된다는 것을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되는 개체의 상, ‘라는 것의 존속으로 이해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섭동작용, 구조접속, 표류와 같은 개념들을 만나면서 형태를 가진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를 뚜렷이 나눌 수 없으며 원인을 하나로 상정할 수 없는 자기생성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체의 보존은 늘 외항과의 접속 속에서 일어나고, 마주침의 방향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주체나 목적이나 방향을 상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뒤섞이며 큰 강줄기에 흘러나와 여러 지류들로 뻗어나가는, ‘표류하는 물을 진화를 이해하는 이미지로 가져가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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