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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류학 7회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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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짱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7-04 03:38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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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4'작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소비와 사용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소비는 '파괴되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하는 식의 파괴가 전제되며 이는 노동과 관련이 있고, 사용은 개체의 이념태는 지속되면서 파괴가 부수적으로 일어나며 작업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소비와 사용은 다른데, 17세기 이후로 노동과 작업의 개념이 섞이게 되면서 인간은 물건으로 세상을 채울 뿐 이 세계가 어떤 것을 담을 그릇인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고 한다.

  작업은 자연에 있는 물질과 관계 맺는 일이다. 작업은 자연을 사물화하며 생산물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폭력의 개념이 들어간다. 시작과 끝이 있으며 결과와 함께 과정은 소멸하고 무의미해진다, 세계를 건설한다.

  호모 파베르의 폭력성에서 이야기가 머물렀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필연적인 공간의 폭력과 호모 파베르의 폭력성을 다르게 보고 있으며 전자의 폭력은 폭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했으나, 후자의 폭력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수업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를 따라가보며 호모 파베르의 폭력성을 음미해 보려고 합니다.

  작업은 정체성을 만드는 것, 세계에 뭔가를 보태는 것인데 이것이 호모 파베르의 폭력 위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세계의 지속은 폭력을 수반하며 내가 나의 본성을 거세, 위반하는 일과도 같이 간다. 물고기를 잡는 방망이에 새를 조각하는 하는 것이 원초적인 인류의 도구관인데, 이것을 폭력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같은 먹음이 노동일수도 작업일수도 있다.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 건설이라는 의도(호모 파베르의 영역)가 투여되면 작업이다. 호모 파베르의 이 목적은 자기를 넘어서 있다.(나 좋자고 보다 더 나가있다) 어떤 세계의 지속인가에 대한 의식적 투사가 계속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폭력이다. 나 좋자고 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데, 어떤 세계의 지속이라는 의식적 투사가 진행된 과정 속에 일어나는 것은 폭력이라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폭력의 개념과 오히려 반대되는 느낌이라 아직 아리송하다. 이 과정을 폭력적이라고 보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세계관을 말해준다. 변화하는 본성을 무시하고 가야하기 때문에. 물질과의 관계에서 목적이 부여되고 그 목적의 세계성, 목적의 지속성은 개체를 초월하고 자연의 리듬을 벗어나 있다. 자연의 리듬을 벗어나 자연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폭력적이라고 하는 것일까?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폭력적이라고 보았을까? 지난 시간 노동과 작업은 결과물에서 결정되며 결과물이 소비를 지속시키면 노동이고 세계의 지속에 보탬이 되면 작업이라고 하였다. 세계의 지속은 자연을 거스르며 일어난다. 그리고 작업에서는 개체의 소외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여기까지 선생님을 따라가며 폭력이라는 개념을 가져가 본다. 233쪽을 함께 읽어보며 폭력을 "인간의 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경험, 전능함, 자신감, 자기 확신과 만족, 의기양양. 견고, 지속, 목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음미해본다.


  '전기 사용'은 폭력을 가하는 이 호모 파베르의 범주도 적용될 수 없게 되었다. 17세기 이후로는 폭력을 가할 자연도 없어졌다. 인간과 자연이 무관해짐으로 내가 자연을 보호한다, 가꾼다와 같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도 재밌었다. 무관해진 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기를 위해 이러한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었다. 전기 사용은 자연이 아닌 상태로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의 조건의 분기점이 되었다. 자연 없이 호모 파베르가 만들어가는 세계는 이제 과정과 기계에 의한 리듬만 강요하며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떼놓는 일만 계속한다. 계속되는 과정의 무의미한 세계에서 찾은 출구가 호모 파베르가 한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공리주의, 인간을 위한 것이 되면서 유적 존재로의 목적만을 설계하고 거기에 세계의 지속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었다.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과정만 남게 되었다. 이 과정의 모델은 공장, 기계처럼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것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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