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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용 2학기 6주차 『야생의 사고』 - 장재훈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재훈 작성일21-06-19 16:05 조회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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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2학기 6주차 - 재훈.hwp


남산강학원/ 2021 청공자 용맹정진/ 야생의 사고2학기 6주차/ 장재훈/ 2021.06.20.일요일 


1. 책 제목이 슬픈 열대인 이유.

 

슬픔, 열대

누가 슬퍼하는가? 열대가 슬퍼한다. 더불어 나도, 레비-스트로스도 슬퍼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책 제목 슬픈 열대에서 열대는 아마존 열대 우림에 사는 원주민들의 사회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슬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주민들과 이들 사회에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니면, 레비-스트로스가 이 열대사회를 살펴보고 이들이 지금 슬픈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걸까? 내 생각엔 둘 다 맞다. 원주민들은 앞으로 더욱 슬픔에 잠길 것이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레비-스트로스 본인도 슬프기 때문이다.

나는 이 슬픈 열대라는 책을 읽어가면서 바닥엔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가, 상공엔 새들과 원숭이들의 울음소리가 넘쳐흐르는 열대와 하늘 찌를 듯 울창한 나무들로 사방이 둘러싸여 더운 공기로 숨 한 번 들이쉬는 것을 압박하며, 인간을 압도하는 열대 그리고 비가 내려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땅바닥에서도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열대를 지켜보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껴왔다.

 

조화와 균형

최근에 봤던 MBC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 나온 원주민들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특히 원주민들이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 기억에 남아있다. 한번은 사냥해 온 음식을 분배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음식을 받고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한 사람이 토라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마구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한다. 나중엔 토라진 사람을 포함해서 다들 웃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이런 식으로 화가 나거나, 토라지면 간지럼을 태움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를 소외된 채로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그 마음이 아름다웠고, 상황의 해결방식이 서로의 살결을 맞댐으로써 이뤄지는 점에서 뭐랄까...우리가 잊고 살던, 참으로 인간적인 해결책이구나라는 생각 또는 저 방식이야말로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한 처방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나 더 있다. 다른 부족마을에서는 축제로 남녀 간의 긴장을 해소한다. 보로로족의 마을이 생각났었는데, 마을 중앙에 위치한 큰 공터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발을 구르며 자기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를 칭찬하는 그런 가사가 있는 노래를 밤새도록 부른다. 이때 여자들은 집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밖을 쳐다봐서는 안 되고, 나오지도 못한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여자들은 남자들이 모인 집에 쳐들어가 오물을 투척하고, 욕을 하고, 잘못 걸린 한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남자들은 오히려 더 보란 듯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칭찬하는 노래를 불러대고 여자들에게 딱히 저항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들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는 머리를 딱 맞은 느낌이었다. 이들 원주민 사회에서는 남녀 간에 힘의 균형이 이런 축제를 통해 맞춰지겠구나. 어느 한쪽의 힘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동성 혹은 이성간의 감정들이 이런 식으로 주기적으로 크게 해소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글에서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균형또는 조화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나에게 원주민 혹은 미개사회하면 아주 불규칙적이고 하루를 궁핍하게 살아가는 그런 애처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원주민들의 삶 꽤나 재미있다. 그림, 마을의 구조, 계급, 남녀의 역할, 족장과 제사장, 종교생활 등등. 이들만의 철학이 있다. 원시사회에는 원시사회만의, 현대사회에는 현대사회만의 저마다가 구축해온 문명이 있을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주민들의 사회에는 사람들의 진정한 웃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이들 사회에도 위계나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이들은 그 상황을 납득이 된 상태로 살아갈 것만 같다. 그래서 삶의 만족도가 우리와 비교해서 높을 것 같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압하는 방식이 아니라 심지어 죽은 자와도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원주민들의 지혜. ‘어떤 안정된 전체감을 인간에게 제공하며, 인간은 슬픔을 축제에 의해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영혼의 지배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황금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레비-스트로스 지음, 슬픈 열대, 한길사, 90)

 

소멸 되어가는 열대. 그래서 슬프다.

이보다 인간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회와 삶이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죽은 자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전체감, 감정이 해소되는 축제, 자연과 영혼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은 진정 행복한 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것이 가능한 사회야말로 진정한 황금 시대라 할 수 있겠다. 허나, 이 자연적 인간을 품은 열대 우림과 원시사회는 현대문명에 의해서 해체되며, 파괴되고 있다. 이 파괴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식시키려 하고, 열대가 이 파괴적인 힘을 막기에는 역부족처럼 보인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도, 나도 슬프다. 글로 읽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이 사람들. 자신과 자연 그리고 우주와 함께 조화와 균형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이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열대가 파괴되고 소멸해버린다는 현실에 말이다. 원시인들도, 지금 스마트폰을 쓰는 우리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직 면밀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원주민들의 사고와 우리들의 사고 또한 비슷한 혹은 동일한 맥락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 지점이 존재한다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 사회에서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한 조건 위에서 자연적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지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2. 야생의 사고1, 2장 제목의 의미와 내용 요약하기.

 

1. 구체성의 과학 = 주술적이고 감각적인 미개인의 사고(구체의 과학) = 신화적인 사고

 

야생의 사고는 신화적 사고가 지닌 일반화 능력과 과학성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작업이다. 구체성의 논리는 형식의 면에서 보면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소 자체와 마찬가지로 요소를 잇는 관계에도 주목한다.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반미술적, 야생의 미술이라 불리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미술이 등장한다. 또한 브리콜뢰르(bricoleur)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아무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신화적 사고는 아직 이미지 속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일반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화 능력은 무엇인가? 과학적이라는 것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그 과학적(scientific)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인가?

 

2. 토템적 분류(=사고뿐 아니라 삶에 직접 연결된은 분류상의 난점)의 논리

원주민들은 동식물과 자연현상의 대응관계를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분류할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지적 수준이 경제적 기술 수준과 대응한다고 섣불리 결론지었기에 원주민들의 분류체계와 관련한 예시들을 더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원주민 특히 야만인이라 부르며 우리가 원시성에 갖고 있는 전통적 이미지는 바뀌어야 한다.

 

원시인의 어휘들은 체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 보수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들의 과학적 전문 용어들과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미개한 인디언들은 자연물의 명명을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고 부족의 집회를 열어서 각기의 종의 성질에 가장 적합한 명칭을 정했다. ()을 나누고 하위군을 구분짓는 데 대단히 정확했다. 어떤 지역에 사는 동식물의 원주민 용어를 기록해두는 것은 단지 경의와 성의를 표시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과학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 지음, 야생의 사고, 한길사, 1997, 105)

 

원주민들은 물질문화의 여러 재료의 이름이나 서식지의 유형에 따라 특징적인 포유류나 조류의 이름을 상세하게 또한 아무 거침없이 열거할 수 있다. 그들의 지식은 대단히 자세하고 정밀하여 주변 지역의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는다(106).

사고뿐 아니라 삶에 직접 연결되는 분류가 넓은 의미로 토템적이라 불리는 분류이다. 사회집단에 명칭이 부여될 때마다 이 명칭으로 인해 형성되는 개념체계의 운영은 그 뒤에 오는 인구통계학적 변동에 달려있다. 인구통계학적 변동은 제 스스로의 법칙이 있으나 개념체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우연적이다(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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