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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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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자 2학년 숙제방

3학기 9주차 / 『안티크리스트』 / 노트정리 / 준혜

게시물 정보

작성자 준혜 작성일22-10-10 20:00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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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리스트.docx


안티크리스트>_ 프리드리히 니체_노트정리


아포리즘 40) 예수를 죽인 자를 유대교와 그것의 최상위 계급이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기존의 사회 질서에 대항하여 봉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 후 그들은 예수도 기존의 사회 질서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자로서 이해하였다. (중략) 오히려 그러한 특징이란 예수의 참된 특징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분명 그 작은 공동체는 예수의 가르침의 요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죽어간 방식이 보여주는 모법적 요소, 모든 원한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초월을.  
관련주석) 자신을 죽인 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원한도 증오도 품지 않은 예수의 죽음.
> 태초의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일까?

아포리즘 41) (예수는)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간극도 부정했으며 신과 인간의 이러한 통일을 자신의 '기쁜소식'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통일을 자신의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니체가 말하는 행복(내 욕망을 바로 보고 인정하고 그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일=힘의 증가)

아포리즘 54) 신앙을 가진 인간, 모든 종류의 '믿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의존적인 인간이며 - 자기자신을 목적으로 정립할 수 없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목적을 정립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신앙인'이란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고 사용되어야 하며, 자기를 사용하고 버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의 본능은 자기 소멸의 도덕에 최고의 명예를 부여한다. 모든 것이 그에게 자기를 소멸하도록 설득한다. 그의 지성, 그의 체험 그의 허영심이 다 그렇다. 신앙은 어떤 것이든 그 자체가 자기 소멸, 자기 소외의 한 표현이다. (중략) 신앙인에게 '참'과 '거짓'의 문제 대한 양심을 갖는 것은 자기 뜻에 달려 있지 않다.

아포리즘 56)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는 '신성한'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교적 수단에 반대하는 이유다. 그리스도교에는 나쁜 목적만 있다. 삶에 해독을 끼치고 삶을 비방하고 부정하려는 것, 육체를 경멸하려는 것, 죄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간의 가치를 폄하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모독하게 하려는 것일뿐이다.

아포리즘 62) 그리스도교의 '인도주의적' 축복! 이것은 인간성으로부터 자기모순을, 자기 모독의 기술을, 그리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거짓에의 의지를, 선하고 정직한 모든 본능에 대한 반감과 경멸을 길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의 말에 따라 정리해보자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무력화시킨다. 인간의 가진 본성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본성을 부정하게 만드는 경로(?)는 본성에 있는 욕망을 불결한 것, 악한 것으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주석에 따르면 위대해지고 싶고, 숭고해지고 싶은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나로서도 이러한 욕망은 나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이기적인 마음, 타인에게는 감춰할 것 같은 마음, 억눌러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니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본성) 인간의 힘을 증진 시킬 수 있는 탁월함으로 본다. 그가 정의하는 인간의 행복은 힘이 증진되었을 때 탁월함을 느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리스도교적인 사고방식에서 인간의 욕망은 사악한 것이고,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럴 경우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부정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죄지은 사람처럼 나를 용서해줄 누군가(신)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끊임없이 이상적인(욕망없는) 모습과 나 자신 사이의 간극에서 모순을 느끼고 괴로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니체는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일단 끊임없이 나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의존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에 말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지점은 그럼 내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증진시킬 것이냐 이다. 왠지 위험한 일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여전히 욕망=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나의 탁월함만 추구하면 어떻게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다시 들여다 본 서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1. 나의 진지함과 나의 열정만이라도 견뎌내려면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냉혹할 정도로 정직해야만 한다.
2. 자신의 힘과 자신의 열정을 모아서 간직하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절대적 자유.
관련 주석). 그리스도교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자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니체는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긍지를 품으면서 자기를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니체가 이기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니체는 사람들이 자신의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는 의식 없이 베풀 정도로 힘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3(서문은 아니고 아포리즘 1에서..). 우리의 행복의 공식은 하나의 긍정, 하나의 부정,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다.

니체의 선과 악 그리고 행복

선(Gut) 힘의 감정, 의지를 고양시키는 모든 것, 주석에 따르면 군주도덕의 탁월함
악(Schlesht)  약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 주석에 따르면 군주도덕의 저열함
+)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선량함과 사악함의 대비는 노예도덕의 가치평가 기준이라고 한다.
> 위와 관련하여 인상적이었던 주석).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치관은 모든 인간을 신 앞에서 동등한 존재로 보는 그리스도교적인 평등사상의 연장이라고 보았다.(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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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주석.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란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 숭고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을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으로 인정하면서 선함을 위대함과 탁월함과 동일시하는 도덕이 니체가 말하는 주인도덕이다. 이에 반해 그러한 욕망을 사악한 것으로 보면서 겸손과 약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강조하는 도덕이 노예도덕이다.  니체는 주인도덕만이 인간들이 탁월함을 향해서 진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 르네상스인들의 명예,강인한 생명력

니체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욕망(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위대해지고 싶고, 숭고해지고 싶은 욕망=인간의 본능이자,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억제하려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의 무력화 시키는 그리스도교의 연민

아포리즘 7.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연민의 종교라고 부른다. 연민은 생명 에너지를 고양시키는 강장제로서 작용하는 감정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그것은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여민에 사로잡힐 때 사람들은 힘을 상실한다. 괴로움 자체로 인해 이미 삶에서 일어난 힘의 손실은 연민 때문에 더욱 커지고 늘어나게 된다. 연민을 통해서 괴로움 자체가 전염성을 갖게 된다.
>그럼 살아감에 있어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은데, 그 공감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연민과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일까?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같이 느껴보려는 것, 느끼는 것은 연민과 다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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