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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자 2학년
오직 접속할 뿐! 오직 배울 뿐! 우리는 관계 속에서 배움이 만들어짐을, 친구 없이는 내 삶도 공부도 없음을 알아갈 것입니다.

청공자 2학년 숙제방

4학기 3주차 / 초코 / 쑥쑥

게시물 정보

작성자 쑤기 작성일22-11-28 21:52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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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3주차_초고_안현숙.hwp



자발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신뢰 회복하기 (미정)

 

평소 나는 모르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이거나 좀 복잡한 것 같으면 금세 모르겠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냥이라는 말도 자주한다. 둘 다 상황을 손쉽게 넘겨버릴 수 있는 단어들이다. 누구나 입버릇은 있지만, 문제는 삶의 중요한 문제에서 조차 이런 말을 하며 은근슬쩍 고민을 넘겨버리곤 한다.

내년이면 남산강학원을 떠나 밖으로 나간다. ‘내년에 뭐할 거야?’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면 아직 잘 모르겠네~’ 라는 말로 넘기거나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년에는 건강위주로 챙기면서 살려고~’ 하며 대충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넘긴다. 중요한 질문이란 건 알지만 자꾸 안 보려 하고 미루게 된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내 습관이나 일상, 애인과 반복적으로 트러블이 일어나는 지점 등과 같이 평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들도 은근슬쩍 넘겨버린다는 거다. 사는 동안 주로 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대해왔던 것 같다. 아니 남의 삶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삶 살고 있으면서 자꾸 이렇게 방관하려는 심리는 뭘까.

모르겠다며 고민할 걸 고민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이 태도. 이런 태도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나 자신감을 깎아먹고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며칠 전 내 일면을 자각하고는 뜨끔했다.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 근데 결국 또 이 문제 넘겨버리겠지? 결국 못 풀겠지?’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올라왔다. 이미 내 안에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회로가 자동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좀 슬펐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자연스레 자신감도 없어졌다.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걱정도 종종 든다. 자신감이 없다보니 세상에 맞서는 게 무섭고 불안하기도 하다.

이런 태도라면 공부하기 전과 다를 바 없다. 2년 전 일에 지치고 몸도 맘도 힘들어서 공부해보겠다고 들어왔다. 내년부터는 나가서 살 거다, 나가서는 어설프더라도 내 두발로 서고 싶다. 그러려고 공부를 한 거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지점부터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마주한 문제들을 피하거나 넘기지 않고 스스로 겪고 풀어나가고 싶다. 그럴 때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회복되고 자신감도 생길 거라고 믿는다.

(정식화 미흡) 그렇다면 나는 왜 내 문제를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고 넘겨버리는가? 나는 왜 나를 믿지 못하는가? 나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회복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 의존하고 싶다

모른다는 말에는 어떤 심리가 담겨져 있는 걸까.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봤다. 한편으로는 질문에 답하는 게 귀찮고 피곤해서 손쉽게 이 상황을 넘겨버리고 싶을 때 모르겠다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모르겠어서 이 말을 사용한다. 어떤 질문이나 고민 앞에서, 내가 뭘 느끼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서 정말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이 말이 입에 붙은 게 아닐까 싶다. 아니 근데 이상하다.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왜 스스로가 모르는 걸까.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안다고.

아니면 실제로 내가 직면한 문제를 그닥 풀고 싶지 않은 걸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분명 문제를 풀고 싶긴 하다. 이때 내 행동 패턴을 살펴봤다. 고민 좀 해보다가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고 그 후 외부의 의견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쌤들에게도 물어보고, 책도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고 그런다. 여기서 포인트는 자꾸 나는 외부의 힘에 의존해서 내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는 거다. 내 의견이 중심이 되는 가운데 저것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려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못 풀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적으로 외부의 힘에 맡기고 싶은 마음으로 이리저리 답을 찾아다닌다. 내가 내린 답이나 결정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나 스스로 문제를 풀 능력이 없다고 믿는 것 같다. 결국 모르겠다는 말에는 나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고 외부의 세계와 힘에 의존하려는 태도가 담겨있었다.

 

자아의 상실과 순응

-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83)

- 자아의 상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낳기 때문에, 순응의 필요성을 증가시켜왔다. 만약 남들이 나에게 기대한다고 생각되는 모습에 불과하다면, ‘는 과연 누구일까? (...) 즉 나는 어떤 정체성도 갖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의 반사를 빼고는 어떤 자아도 존재하지 않으니, 나는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그대로의 것이다. (103)

 

프롬은 현대인의 자아는 상실되고 억압되었다고 진단한다. 프롬에 따르면 자아를 상실한 사람은 순응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자아 상실이 어떻게 순응으로 까지 이어지는 걸까? 나는 평소 외부의 힘에 의존하고 따르려는 순응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 태도는 어쩌면 자아의 상실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자아가 상실된 이들은 평소 어떤 상태일까. 프롬은 자아가 상실된 이들, 그래서 가짜 자아를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평소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들의 주된 감정은 불안일거라고 생각한다. 평소 우리도 그럴 때 있지 않나.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 도통 뭔지 모르겠는 때 답답하고 불안하다. 이처럼 자아가 상실된 이들은 평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도 없을 테니 답답함과 불안 속에서 살 것이다.

불안순응과 궁합이 잘 맞는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때 우리가 흔히 남을 따라하게 된다. 아니면 남들이 뭐든 알려주거나 시켜주길 바란다. 남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고 불안이 해소되는 것만 같다. 거기다가 타인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면? 드디어 내 정체성을 찾은 것만 같고 희열을 느낄 거다. 자아가 상실된 이들은 바로 이 순응에서 오는 안도감과 편함 때문에, 스스로 순응의 필요성을 증가시켜온 것이지 않을까.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았을 때 오는 기쁨은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공허감을 메우기 딱 좋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그렇게 남들이 원하는 내가 되어 간다.

풀다보니 평소 내 모습과 너무 겹친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을거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 같다. 며칠 전 주방카페 서사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서사를 가져갈 때 별로 쓸 말이 없어서 내가 진짜 느낀 게 아니라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그러니까 서사감이 되어보이는 서사를 가져갔다. 이런 서사를 준비했을 때는 발표하고 나면 꼭 친구들이 그래서 너가 배운게 뭐야?’ 라는 질문을 한다. 내가 진심으로 느끼고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그게 다 느껴지나보다. 그래서 마지못해 작고 사소하지만 진심으로 느끼고 경험했던 사건을 솔직하게 말하면 친구들이 그제서야 이걸 서사로 가져오지 왜 맘에도 없는 걸 가져왔냐고 타박한다. 이렇듯 습관적으로 나는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왠지 틀린 것만 같다. 대신 타인이 보기에 그럴싸하고 인정할만한 것을 표현하곤 한다. 내 표현과 행동기준은 대개 타인의 시선에 있다.

평소 타인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하는 몇몇 행동들이 있다. 립서비스도 하고, 드립도 치고, 웃기지도 않은데 웃거나 궁금하지도 않은데 들어주는 척을 한다. 내 찐친들은 이런 모습을 알아채고는 쑥이는 인기관리 중이라고 놀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이 바로 내 가짜 자아였구나. 자꾸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서 행동하려고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들이 모두 내 자아의 상실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진짜 자아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

그런데 인간이 자아를 상실했어도,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으로 만족스럽고 좋다면 그냥 가짜 자아로 살아가도 되는 거 아닌가? 꼭 진짜 자아로 살아가야만 하나? 프롬은 자발성과 자아를 포기하면 삶은 좌절한다(104)고 말한다. 자동인형처럼 순응하는 삶을 사는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았을지 모르지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죽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타인의 인정이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으로는 자아 깊은 곳에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아까 서사이야기 말이다. 별일은 아니었다. 특식이 있는 날 준비를 마친 후 친구들과 쌤들이 오늘 특식이었냐며 함박웃음을 지어주며 주방을 찾았다. 괜스레 뿌듯했고 처음으로 대접하는 마음이 이런거구나 라는걸 느꼈다. 작고 사소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느꼈던 이야기하니 말하는 내 마음도 편하고 충만했고, 듣는 친구들 마음에도 그 말이 가닿는 게 느껴졌다. 의식하건 안 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83) 프롬의 표현이 딱이다. 또 내가 진정으로 느낀 마음이다 보니, 다음 활동할 때 자연스레 그 마음이 불러일으켜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진짜 자아로 활동했을 때는 삶을 온전하게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음을 불러일으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배운 것을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짜 자아일 때는 그렇지 않다. 삶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불만족이 있다. 아무리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서 오는 기쁨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 공허감을 채우려고 한다. (근거 >) 프롬은 인간은 자발적으로 삶을 경험하지 못할 때, 어떤 흥분과 전율을 대용품으로 받아들인다(105)고 말한다. 술이나 스포츠가 주는 스릴, 영화 속 허구적 인물을 통해 경험하는 스릴을 말한다. (예시 있으면 쓰기)

 

창조적 활동, 진정한 관계, 자발적 활동진짜 자아와 자발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진정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며 삶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건 생명 없는 사물이건 창조적 활동을 통해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만이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자발적 활동이 낳은 속성들만이 우리의 자아에 힘을 주고, 자아가 온전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아준다. (82)

중요한 것은 활동 그 자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 인간은 그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 - 지금 이 순간의 활동을 경험하는 것 - 을 잃고 환상 - 성공이라고 불리는 환상적인 행복-을 뒤쫓는다. (83)

 

프롬은 자발적 활동이 낳은 속성들만이 우리의 자아에 힘을 준다고 말한다. 약해진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활동으로 삶을 채워야 한다. 자발적 활동? 창조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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