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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2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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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영 작성일17-06-06 14:08 조회6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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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우리는 억압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풀어주었다. 다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분명 억압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억압받는 곳에서 고백이라는 방식으로 우리는 더 더 말하고 싶어졌고 더더 알아야 하는 지점을 거쳐왔다. 그리고 성과학(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은 지식-권력으로 작동했다. 아르스 에로티카(성애의 기술)는 실천과 경험으로 얻어지는 쾌락이 육체와 영혼에 미치는 반향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과학(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이라는 장치를 통해 권력-지식이 구성, 작동하면서 아르스 에로티카로부터 도출 되는 쾌락의 진실은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와보니 억압받는 자체가 아니라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지점 즉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권력이 전략을 바꿔 전쟁모델로 작동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가?" 왜 자유를 말씀하시는 거지? 했다가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니 근영샘이 지적해준 부분이 연결되었다. 여전히 맥락을 못 잡는구나!! ㅋㅋ


함께 읽는 자료에 '유래는 몸을 중시한다'하는 문구가 있다. 푸코가 성은 곧 진실이라고 말하는 지점과 연결되는 것 같다. "이 기술의 효과는 그 무미건조한 비결들에 비추어 추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까닭에 , 누구라도 이 기술의 이점을 얻게 되면 가령 육체의 완벽한 통제, 독특한 기쁨, 시간과 한계의 망각, 장생의 영약, 죽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에 이르게 되면 전혀 딴 사람이 되는 것"(69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유자재로움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것에 대립적 요소로 지식, 앎, 경제, 정치 등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저러한 것들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역사, 권력의 이동과 변모에 대한 살펴봄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권력의 이동과 변모를 살펴봄으로써 자유롭지 못한 지점을 발견하고 억압받는다고 말하는 부자유로부터 자유롭고자 할 때 보다 더 현실적인 지점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절절한 고민인가? 그들만의 철학사고놀이가 아니구나하는 생각까지 해보는 시간이었다.


두 번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푸코는 마치 사전적 지식을 만나는 과정처럼 딱딱함은 물론 말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매력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딱딱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했던 사고놀이처럼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책을 지식으로, 앎으로만 만나 온 나의 문제이며 무엇보다도 맥락을 짚어나가지 못해 그의 절절한 문제의식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차시까지 진행하고도 여전히 읽어내야 하는 문제로 되돌아온 기분이다^^;; 수업에서도 근영샘은 근대 이후 앎과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계에 대해서 몇 번 지적해주셨다. 그래서 다시 읽어야 하는 장벽 앞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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