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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5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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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isa 작성일19-10-06 21:43 조회1,079회 댓글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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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공정하게 발제자들의 가위바위보 결과를 통해 후기작성의 영광을 맡게 된 박주영입니다. 천개의 고원 5주차에는 6기관없는 신체에 관하여:“인간은 자신이 본래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7얼굴의 정치학 : 얼굴의 권력, 권력의 얼굴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서형샘과 유리샘은 6장과 관련하여 희영샘과 저는 7장의 내용중에서 발제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발제 내용보다는 저희 발제 스타일 및 토론과정에 대해 근영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내가 강렬하게 만난 부분에 대해 발제해야 하는데 해석 위주로 하거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천개의 고원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도 강조되었지만 이 책은 이해하거나 해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우린 참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내용을 알면 잘 하겠지, 일단 이해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강한 습을 버리기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6, 7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강렬하게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문제로 연결시키지 못했어요. 즉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에 빠져 내가 책과 만났다고 착각만 하고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질문 하나 끌어내지 못했네요. 발제 외에도 토론시 6, 7장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들뢰즈/가타리가 하는 얘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주제에서 잠깐 나오는 개념(ex: 되기의 문제 등)에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원시인의 얼굴 없음과 보편적이지 않은 얼굴성과 관련하여 저희가 되기를 논의할 때 되기서양인-되기와 같이 잘못 사용했던 것이죠. ‘되기는 다수적인 것에 사용하면 안 됩니다. ‘되기는 중심에서 벗어나는 소수성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호랑이-되기’, ‘유목민-되기는 가능하지만 부자-되기’, ‘백인-되기는 모순적인 것입니다.


    6장은 CsO(기관없는 신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저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처음 접한 CsO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CsO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욕망과 쾌락의 관계였는데요. 정신분석은 욕망이 출산이나 생식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욕망에 결핍이라는 부정적인 법칙을, 쾌락이라는 외적 규칙을, 환상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새겨 넣는 새로운 수단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들뢰즈/가타리가 말한 욕망이 외척 척도인 쾌락과 맺고 있는 사이비 관계, 마치 욕망은 쾌락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처럼 생각해왔습니다. 즉 나의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케익을 욕망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연인을 욕망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들뢰즈/가타리는 쾌락은 긍정적 욕망의 연속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지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천개의 고원297p)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쾌락이 우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네요. 이와 관련된 내용은 300p에서 더 자세히 다뤄집니다. 외적 쾌락의 포기나 지연, 쾌락에서의 무한한 멀어짐은 오히려 욕망의 승리를 나타낸다고 하네요. 저희가 생각하는 욕망과 쾌락의 관계와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쾌락의 달성이야 말로 욕망의 목적일 것 같은데, 쾌락과 멀어지는 것이 욕망의 승리라니. /가는 쾌락이 인격, 주체와 관련 있다고 합니다. 쾌락은 인격 또는 주체의 변용이며, 인격이 자기를 되찾기 위한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실제 우리에게 자아라는 주체는 너무 견고하며, 우리는 쾌락을 통해서 자아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는 자기를 되찾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궁정풍 연애를 들어 설명하며 자아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서로 마음의 통하는 것으로서의 환희(joi), 시험 등 쾌락적이지 않는 사랑법에 대해 알려줍니다. /가는 오히려 오르가슴같은 강렬한 쾌락은 욕망에게 오히려 난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쾌락이 욕망 자체의 흐름, 즉 내재성의 흐름이 되도록 하는 것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