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더듬거리며 내 언어로 말하고, 내 발로 삶을 걷는 법을 배운다.

읽생 철학학교 읽생 철학학교

천개의 고원 7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수정수정 작성일19-10-31 23:28 조회1,079회 댓글5건

본문



안녕하세요 류수 아닌 수정입니다ㅎ

이번에는 10장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부분을 읽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되기'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발제를 자처했지만

어마어마한 분량에 1차 KO패를 당하고,

어디를 붙잡고 들어가야할지 막막하여 2차 KO를 당했던 장이었던 것 같습니다ㅎ

이번 발제는 저와 코난샘, 은경샘, 류수샘, 관희샘이 맡았는데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관희샘 발제였습니다.

관희샘은 되기의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화두인 성욕을 어떻게 추상화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성욕을 아름답게 그려내보면 어떨까? 하는 부분에서는 물음표가 떴지만ㅎ

성욕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미지들을 탈각시키는 추상적인 기계의 작동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요.


10장에서 이야기하는 동물-되기란

지층화된 삶을 어떻게 유동하게 만들까?라는 질문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근영샘께서 첨언하시길, 온갖 마법사와 다양한 ‘되기’를 총 동원해 설명하려는 걸 보면

들뢰즈도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험하는 중인 것 같다고 하셨지요.


어쨌든 되기란, 내 몸의 변용을 얼마나 일으킬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지난 번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화를 냈을 때 얼마나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을지, 즉 변용태의 수가 그 사람의 자유의 정도라구요.

이번에는 그 예시로 하루살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루살이가 만세력보다 더 적은 시간을 가진 것은 아니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동일한 시간은 아니지만 어떤 동물은 기껏해야 하루나 한 시간 이상은 살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몇 년의 세월이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주체나 객체보다 길수도 있다.

<천개의 고원, 들뢰즈 과타리, p495>


아무리 오래 산 주체보다도, 하루살이나 몇 년을 사는 동물들이 더 긴 세월을 사는 사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인데요.

변용태가 하나인 사람은 70년을 살아도 하루를 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지요...ㅠㅠ

이것을 깨주는 시간성이 바로 아이온입니다.

아이온은 사건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기억에 남을만한 아주 낯선 것들의 시간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우리를 주체의 바깥으로 데려가 탈영토화를 일으킵니다.

그 때 강렬하게-되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주의와 집중이죠!

친구들이랑 즐겁게 수다를 떨 때, 좋아하는 책을 집중해서 읽을 때와 같이 무언가에 집중할 때

'나'가 사라져버린 경험을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집중력으로 누가 와도, 무엇이 와도 접속해서 사건을 만들어낼 때,

'내가 살아 있구나'라고 느낄 때.

그제서야 하루를 더 살았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화스님께서 말씀하시길, '경험과 성취는 다르다'고 하셨죠....ㅎ

저도 그 강의를 들었지만, 성취는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할 때 그 모드가 딱 되는 거라고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훈련이 필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아이-되기란 위에서 말한 아이온의 시간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데요,

왜 '아이-되기'냐 하면, 아이는 배운것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유하지 않으니 주체가 만들어지지 않고, 사건들로 이루어진 시간을 살 수 있는 거죠.

매순간이 변용태 생성의 시간이라니... 아이들이 늘 해맑은 것은 그것 때문일까요?



....

저는 요번 조모임에서, 샘들에게 공명이 아닌 방식으로 접속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에 끼지 못하고 주춤주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도 역시 '나'일까요? ㅠㅠ 어쨌든 주체를 망각하지 못한 건 맞는 것 같아요.

다가올 요번 주는 또 다르게, 강렬하게 실험해봐야겠습니다!

그럼 토요일에 뵈어요~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작성일

수정 아닌 류수입니다. 저는 이번에 발제를 하면서, 되기 보다는 주체를 더욱 곤곤히 하는 방향으로 발제를 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아이는 아이-되기가 될 수 없다. 경험은 하지만, 성취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 이거야"라고 하는 강렬함의 배움인 아이-되기, 쉽지 않지만 그러기에 한 번더 도전해 봐야갰습니다. 후기 고마워요.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저에게 이번 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말은 '속도'입니다.
발제에서도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그동안 여러번 반복해서 나왔던 그 개념이 이번 10장에 와서야 접속이 된 느낌이었어요. 아 그냥 다 속도 차이구나~
그리고 수정샘 후기를 통해서 아이되기에서 제가 놓친 부분을 새로 보게 되었네요. 저는 아이되기가 배움의 시간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배움을 소유하지 않리 때문에 아이 되기라는 문장으로 한번 더 배우고 갑니다.
이제까지 나는 몇 년짜리 삶을 살아왔을까 앞으로는 몇 년짜리 삶을 살다가 갈까를 생각해 보게 했던 수업이었습니다.
수정샘 후기 감사해요.

단호박님의 댓글

단호박 작성일

수정샘
차분하게 공부하고 조별토론하는 모습,팬심으로 보고있네요?ㅎ
이렇게 나이많은 아줌마도 탈주체가 요원한데
샘 연배에 이런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만해도 부럽기 그지없네요

샘 후기 덕 샘들 발제 내용과 아이언과 크로노스의 시간, 더 이상 이제껏의 리듬으로 살지않을 때 다시 새로운 하루가 더 시작된다는 근영샘 강의까지 두루 생각나고요
낯선 변용체가 될 때에만 시간은 다시 째깍거릴거니 너무 안녕하게 살려고 애쓰지않아야겠습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아침놀5님의 댓글

아침놀5 작성일

항상 바쁘게만 사는 습관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깜박하여 댓글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이번 10장에 마법사, 쥐, 아이온, 변신 등의 단어들이 나와 놀랐었습니다.
아직도 철학은 논리와 무미건조하다라는 이미지가 있는 제겐 10장이 화려하면서 낯설게 다가왔었습니다.

수정샘의 후기에서 동물-되기란 지층화된 삶을 유동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해줬고, 다른 말로는 내 몸의 변용을 어떻게 일으킬까라는 것이라고 상기시켜주셨네요.
그럼 지층화된 삶이란 11장에 수업 때 근영샘이 말한 지각도 안될 정도로 자주 반복하는 행동, 의심을 전혀 하지 않는 나의 도덕의 전제들, 성욕을 하나의 충동으로 다양하게 보지 않고 한 방식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럼 내 “몸의 변용을 얼마나 일으킬 수 있을까”란 지각되지 않는 행동을 알아차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아 논리와 반대로, 다른 방식으로 산 후에 지각되는 것이 맞을 수도…), 내가 진리 및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본 후 나만의 도덕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 성욕의 해소가 곧 섹스가 아니며 모든 성욕이 내 안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난 나의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한번 더 추측해봅니다.

이러한 ?되기를 실천한 순간만이 내가 살아온 시간(아이온)이라는 것. 그 외 시간은 모두 멈춰있다는 말은 무서우면서 그만큼 설레기도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 항상 동일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말 ?되기를 실행하지 않으면 시간이 멈춰버린거 같습니다. 저 또한 강렬도를 생산하지 않으면 생산하지 않은 그 시점에 멈춰있다가 죽는다는 사실이 무서우면서 동시에 강렬도를 많이 생산하다보면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처럼 빛이 날 수도 있으니 시간을 아름답게 쓰면 나 또한 빛이 나는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수정샘이 언급해주신대로 주의와 집중이 ?되기의 첫 걸음이자 핵심인거 같습니다.
평소의 습관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공부할 때에는 주의와 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 또한 죽은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11월을 보내야겠습니다.
후기 감사합니다.

모긴님의 댓글

모긴 작성일

배우나 소유하지 않는것, 문제는 무엇을 접하든 결국 그 끝은 주체에게로 끌어와 기어코 '내 것'이라고 느껴야 안심하는 이 못쓸 버릇인 것 같습니다. '~되기'라고 하면 항상 있지도 않은 ㄱ '무엇'을 먼저 찾느라 분주했었고, 그 핑계로 '되기'의 유동성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함께 공부하는 이유는 내가 미처 감각하지 못한 것들을 타인의 채널을 통해 새롭게 줍게 되는 신비한 경험때문인 듯 하네요. 함께 들었지만 제대로 접속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