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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조] 시즌10 <장자> 2/3 후기와 발제 (96/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재훈 작성일20-12-28 17:20 조회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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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청백전 후기를 쓰는 장재훈입니다. 저는 청용에서 오강남 선생님의『장자』를 읽고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언어 그리고 이야기를 해석해주는 오강남 선생님의 말들이 아주 재미있어서 장자를 더 배워보기 위해 다른 세미나를 들었었는데요. 쉽지 않아 금세 흥미가 사그라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청백전에서 오랜만에『장자』 다시 읽게되니 예전 메모들도 보이면서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장자』를 읽다보면 장자가 무엇을 강조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초월한 존재로의 도약, 기가 되는(?) 혹은 기와 통하는 경지, 몸은 사람의 형태이지만 그 '나'라는 것에 얽매임이 없는 존재 등등.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이미 너무나도 비대해서 타자가 들어갈 공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가죠. 곰샘이 책에 쓰셨던 구절이 갑자기 생각 납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유와 지성의 능력에 대해 평생 몰두했다. “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구원을 위한 것인 듯 예속을 위해 싸우는가?”라는, 스피노자의 문제의식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자신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이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은 오히려 당신을 노예 상태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고미숙 지음,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북드라망, 155)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손길을 안겨줄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는 구절입니다. 정말 우린 매번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지금 나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청백전 세미나로 돌아와서,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장자』에 등장하는 곱추 애태타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었습니다. 장자가 공자의 말을 빌려 말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죽은 어미 돼지의 젖을 빠는 새끼 돼지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끼돼지들은 어미가 죽은 걸 알고는 도망쳐버리죠. 공자는 새끼돼지들이 사랑한 것은 어미의 몸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몸을 움직이는 무엇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무엇'이 새끼 돼지들을 향한 어미돼지의 '사랑과 정(情)' 즉, 모성애라고 생각했고 혹시 애태타도 인간에 대한 인류애 혹은 사랑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그런 그를 사랑해서 모여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애태타는 그 인간에 대한 사랑(제가 생각한 본연의 인간성)을 잘 보존 했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인간에게 닥치는 온갖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느긋하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덕이 있음을 뽐내지 않는 그의 겸손한 태도를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태타의 인기비결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것, 자신의 인간 본성을 잃지 않고 닦아 갈 때 겸손하고 의연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일단 피드백은 점프가 심하다는 것, 좀 더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세미나에서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신기한 주제인 마음을 굶기는 심제(心齊)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남녀를 구분하고,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고,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가르는 일체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초월할 수 있다면 마음을 굶길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걸까요? 주객 이원적으로 분별하는 일상적 의식에서 원초적 비이분법적 의식 상태로의 변화를 우리는 원할까요? 원하던 원하지 않던 비이분법적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온몸으로 타자와 만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비워서 가볍게 만드는 책 『장자』! 다음 시간도 기대되네요~! 

 



남산강학원/ [청백전화요반]s.10/ 장자/ 장재훈/ 2020.12.22.화요일


만인의 연인 애태타가 갖춘 느긋함 그리고 겸손함

 

추남 애태타(哀??) 이야기

장자5편에는 등이 굽은 애태타라는 사나이의 어떤 매력이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공자에게 물어보는 노나라 애공(哀公)과 그에 답을 해주는 공자가 등장한다. 추남 애태타는 겉보기에 평범한 우리와는 달리 등이 낙타처럼 굽어져 있는 사나이다. 겉모습이 흉하다보니 타인이 애타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꺼려질 만도 할 텐데 웬걸, 애태타의 주변으로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가령 애태타와 시간을 보낸 남자들은 그의 생각에 곁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여자들은 한술 더 떠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느니 애태타의 첩이 되겠다며 부모를 졸라대는 형국이다. 애타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노나라 애공은 애태타에게 나라의 살림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 요청이 성사되지 못하고 애태타는 애공을 떠나버린다. 자신을 떠난 애태타를 못 잊어 그리워하던 애공은 공자에게 묻는다. “애태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새끼 돼지들이 사랑했던 어미 돼지의 무엇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마침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새끼 돼지들은 조금 있다가 순식간에 죽은 어미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어미 돼지에게서 저희의 모습을 볼 수없었을 뿐 아니라, 이제 저희와 전혀 다른 종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몸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몸을 움직이는 무엇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이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장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245-246)

 

공자는 자신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목격한 죽은 어미의 젖을 빨던 새끼 돼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끼 돼지들은 자신들에게 젖을 내어주며 드러누워 있는 어미 돼지가 더 이상 자기들이 알던 그 어미 돼지가 아님을 알아채고 젖에서 입을 떼고는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왜 달아났는가? 새끼돼지들은 젖을 빨다가 어미 돼지가 자신들처럼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그것은 곧 어미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끼 돼지들이 사랑했던 것은 어미가 제공해주는 젖을 먹었을 때 따라오는 포만감이라는 행복도 있었겠지만, 자신들에게 젖을 물려줘서 밥을 먹이기 위해 어미 돼지 제 몸을 움직이게 만든 자식들에 대한 정()과 사랑 같은 것이었을 거라 공자는 말한다.

어미 돼지를 통해 공자가 볼 수 있었던 그 몸을 움직이는 무엇은 자식에 대한 어미 돼지의 사랑, 모성애였다. 새끼 돼지들에 대한 어미 돼지의 사랑이 새끼 돼지들로 하여금 어미를 사랑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겉보기에는 세상 추한 애태타를 사람들이 사랑하고 자꾸 생각이 나서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겉모습이 추해 보여도 사람들이 애태타의 곁에 있고 머무르고 싶던 이유는 어미돼지가 그랬듯이 애태타 또한 사람들에게 사랑 즉, 인류애를 선보여서인가? 글쎄,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애태타는 반드시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는 것과 그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을 끌어당긴 애태타의 느긋함그리고 겸손함

먼저, 재질을 온전히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는 애공의 질문에 공자는 죽음과 삶, 성공과 실패, 추위와 더위 같은 것은 모두 사물의 변화이자 명()의 운행이여서 우리의 눈앞에 밤낮으로 나타나지만 우리의 앎으로는 그것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런 사물의 변화들이 우리의 마음의 조화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마음이 조화롭고 즐겁도록 시원히 트여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기쁨을 잃지 않고 있어야 우리가 세상의 사물과 접하게 되었을 때 마음에 봄이 오도록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애태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 운명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서 일희일비 하지 않고 느긋하고 의연한 태도로 그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애태타가 믿음직스럽고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 아닐까? 애태타의 마음이 이 정도로 굳셈을 알게 된 순간 사람들은 그의 굽어 있는 등마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겉모습이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되는 순간이다.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공자는 평평한 것은 물이 완전히 고요해진 상태라고 하면서 이러한 상태가 본받을 만한 이유는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 출렁이지 않기 때문(같은 책, 248)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애태타는 외부의 상황에 치달리고 흔들리는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자신의 본연의 마음을 보존하였고 그런 애태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심이 있으면 오만해지고 경솔해질 법도 한데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겸손함이라고 생각했다.

애태타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된 것은 한 사람을 진정 매력이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외면의 멋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의연한 태도로 살아갈 때, 자신의 인간 본성을 잃지 않고 닦아 갈 때,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과 관심에 도취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한 태도로 의연하며 고요한 물처럼 살아갈 때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다면 애태타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가?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과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면서 내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 그리고 느긋한 마음을 보존해가는 것.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한 인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임을 애태타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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