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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조] 시즌10 <도덕경> 1/3 후기와 발제 (9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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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쿵푸듀공 작성일21-01-23 11:49 조회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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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화요 청백의 이지훈입니다. 이번시간에 저희는 장자에 이어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장자때도 느꼈지만, 이번 노자에서도 역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생겨먹은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동양 철학서에서는 그 내용 중 핵심이 되는 부분을 책의 맨 앞장에 소개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요, 노자의 첫장은 도(道)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노자는 도에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이름붙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영원한 도라는 것인데, 노자는 이를 하늘과 땅의 시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그렇다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도를 부정하느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있는 도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도라고 부르는 것, 저는 이것을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역을 예로 들어보면 각각 괘의 이름이 있고 괘사와 효사에 따른 설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과 설명이 있는것을 이름 붙일 수 있는 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 때에 따라 지혜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에 따라 만물을 생해줄 수 있기에 어머니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이름붙일 수 있는 도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붙일 수 없는 도는 하늘과 땅의 시원. 다시말해 이 세상이 이렇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기본 원리, 원칙(p.21)같은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것 보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스럽다'(p.22)고 한 것처럼, 지금 여기에 나를 포함한 그 모든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자체로서 도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가슴속에 적지않은 울림이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는가? 지금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사유해본적이 있었는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에 세상의 원리를 떠올릴 수 있었는가? 하는 성찰이 들면서 말입니다.

  살다보면 존재한다 것 자체가 도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애써 바꾸려는 나의 모습이 보일때가 있습니다. 제 머리가 떠올랐습니다. 언제부턴가 머리 숱이 적어지기 시작했고, 매일 머리를 손질하지 않으면 맘에드는 머리가스타일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지금의 상태가 마치 극복해야하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예전 머리숱이 많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서, 탈모약을 먹어볼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노자는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p.24) 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머리 숱이 없는 것을 결핍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결핍일 수는 없을 것 입니다. 머리 숱이 많을 때가 있었기에 지금이 결핍으로 느껴지고 다른사람과 비교하기에 결핍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머리숱이 없는게 본질적으로 결핍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되었습니다.

  머리 숱이 적어지는 이유가 혹시 건강상에 문제 떄문일 수도 있으니, 그런것들을 공부하여 나의 생활 패턴을 바꾸는 노력은 필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지금 현재 상태를 부정하거나 자책한다면 결국 길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도반들과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꿀 수있는 것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지혜를 만났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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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강학원/ 화요 청백/ 발제/ 『도덕경』, 현암사/ 이지훈/ 2021.01.05(화)

도의 신비함

존재한다는 것 자체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것.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스러운 것.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 『도덕경』, 현암사, p.19)

동양 철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을 책의 맨 앞에 소개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 하다. 도덕경의 첫 장은 도로 시작하기에, 그것이 꽤 중요해 보인다. 도는 무엇일까? 책에 따르면 '도'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영원한 도'라는 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다. 즉, 도에는 두 가지 측면(p.21)이 있다는 얘기다. 하나는 우리가 '도'라고 이름 붙여 부르는 현상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여러가지 도리같은 것들이 우리가 이름을 붙이는 '도', 현상적인 측면에서의 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 붙일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의 도는 어떤 것일까?

오강남 선생님은 그것을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하는 무엇', '그것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본 원리',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우주의 기본 원칙'(p.21) 등으로 해석한다. 즉 영원한 도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숨 쉬고 움직이고 존재하도록 하는 어떤 기본적인 원리같은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영원한 도'에 따라 여기에 이렇게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원한 도라는 것은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라는 것이다. '도'라고 하면 엄청난 양의 공부와 진리 탐구를 통해, 눈앞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 처럼 어느 순간 탁하고 터득하는 것인 줄로 알았던 나에게는 이 부분이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공기에 묻혀 사는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듯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 못해 의식조차 못하고 살아가기 일쑤였는데, 노자의 말은 이렇게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신비로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비본질적 세상

하지만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경이롭고 신비하게 느껴지다가도, 살다보면 불만 혹은 오만이 생길 때가 있다. 내가 못 가진 것을 상대방은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남이 못가진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그렇다. 전자의 상황에서는 나 스스로가 한 없이 결핍된 존재로 느껴지기 마련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허세 가득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노자는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p.24) 이라고 말하며,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내 손가락이 '길다'고 할 때 그 길다고 하는 것이 내 손가락 자체에 본질적으로 들어 있는 성질로 보는 것이 보통의 상식적 관찰이다. 이런 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본질론적 사고(essentialist view)'라 할 수 있다. 반면 내 손가락이 길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손가락이 길 수도 있고 동시에 짧을 수도 있다는 것, 길고 짧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을 보도록 하라는 것이 도가道家의 가르침이고 이런 식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비본질론적 사고(non-essentialist veiw)'라 할 수 있다.“ (같은 책, p.26)

그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은 없으며, 모두 상대적으로 그러한 것일 뿐이라는 비본질론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불만이나 오만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노자를 통해 존재의 경이로움과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그러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은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의연함을 키워주었다. 앞으로 남은 도덕경을 읽어나가며, 나의 내면과 외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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