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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조] 시즌10 <도덕경> 2/3 후기와 발제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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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빈 작성일21-01-25 10:29 조회1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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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99번째 후기를 맡은 문빈입니다. 이번 주에 저는 노자가 말하는 ‘함이 없는 지경’이 무엇인지 질문해보았습니다! 지난 세미나들에서 저희는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한 우리의 모습들을 발견했는데요. 10년 넘게 택견을 했던 친구는 택견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택견을 하는 것 아니냐며 맹자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고, 그리고 다른 친구는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게 당연한 것 같다면서 또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건가 싶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혼란스럽기에 저는 한 번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정리한 노자의 ‘함이 없는 경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 자체가 안됩니다. 일단 무언가를 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할 때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인데요! 제 생각에는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의식한 채로 행동하는 것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행동하는 것 크게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함이 없는 경지’는 바로, 무언가를 하지만 내가 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노자는 ‘함이 없는 경지’를 다양한 사례와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주는데요! 이번 주에 저는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마음’에 관한 노자의 이야기가 재밌었습니다. 노자는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대로 ‘함이 없는 경지’로 무언가를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는데요!


  여기서 저는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마음’을 내 리듬에 맞추어 세상을 구성하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읽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게 내 리듬에 맞춰서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심지어 놀 때도! 그러다 다른 리듬이 끼어들어 내 리듬이 깨지기라도 하면 화를 내거나 좌절하곤 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말 당연할까요? 노자는 그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난 생각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자연은 각기 다른 리듬을 가진 것들이 우글우글합니다. 서로 부딪히고, 섞이면서 다른 리듬을 만드는 게 우주인 것이지요! 이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길은 ‘함이 없는 경지’밖엔 없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저희는 변화하는 우주 속에서 ‘함이 없는 경지’를 실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함이 없는 경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나의 자아상을 계속 지워나가는 것이 ‘함이 없는 경지’인 것 같다며,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국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게 또 어떤 거지라며 혼란스럽게 끝나기는 했지만... 다들 재미있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눴습니다.


  다음 주에는 벌써 청백전이 마무리됩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네요! 끝난다고 하니 즐겁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쉽기도 한 느낌이 드네요...! 다음 주는 마지막으로 석영 누나가 도덕경 발제를 합니다. 다음 주에는 노자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되네요~~ 이상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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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강학원 / 청백전 세미S10 / 『도덕경』 / 2021. 01. 12 / Empty Moon   


자연스러운 삶, 자유로운 삶


  우리는 모두 매일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서 살아간다. 일과를 시작하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점검하고, 어제 내가 미흡했던 부분을 발견하면 오늘은 그것을 다르게 해보리라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는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과 글을 쓸 때는 이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은 실천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실천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려고 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도덕경』에서 노자는 하려고 하는 마음은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더 큰 의지를 내고 더 힘써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는 모자랄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러면서 노자는 우리에게 ‘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라고 말한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함이 없는데 되지 않는 일이 없다니!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나를 부추기는 데에 익숙하다. 그런데 노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파괴한다. 그러면 노자는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마음


세상을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휘어잡으려는 사람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다양해서]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있고,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고, 꺾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너무함, 지나침, 극단 등을 피합니다.

(『도덕경』 / 老子 원전, 오강남 풀이 / 현암사 / 140p) 

 

  노자는 우주 법칙, 자연의 이치를 따져봤을 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는 필경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마음, 원하는 바가 있을 때 그것이 세상을 휘어잡으려 할 때가 있다.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가령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로 인정을 받고 싶다’라는 바람이 생겼을 때, 나는 이 바람을 이루기 위해 세상을 휘어잡으려 한다. 내 공부의 리듬에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않으면 좋겠고, 예상치 못한 일을 피하고 싶어지는 것이 그렇다. 내 공부의 리듬에 맞춰서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리듬을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세상을 휘어잡으려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내는 우리에게 노자는 말한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이라서 우리가 통제하려고 한다고 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즉, 세상은 내 리듬에 맞춰주지 않는다.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리듬들이 뒤섞여 부딪히면서 존재하는 신령한 곳이다.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있고,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다. 습하고 우중충한 날씨, 코로나, 사고로 인해 멈춘 지하철, 옆에 있는 친구의 감정…. 등 내 바깥에는 서로 다른 리듬들이 북적북적 흘러가는 세상이 있다. 그런 세상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을 내다보면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다른 리듬이 내 리듬을 침범하여 그렇게 됐다며 탓을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만큼, 집착했던 만큼 이루지 못했을 때의 상처는 크다. 그래서 노자는 성인들이 “너무함, 지나침, 극단”을 피했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다. 거기에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을 계속 얹으면 결국 나에게 좋지 않은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행하기

  그러면 노자가 말하는 ‘함이 없는 경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거일까?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맞춰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은 채로 의지나 욕망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할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런 욕망과 의지 없이는 누구도 생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버는 등 대부분 행위는 근본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위에서 움직인다.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다 있다. 그리고 우리는 되도록 이번 생을 ‘잘’ 살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억지로’ 하려는 데 있다. 


도는 언제든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 된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나 제후가 이를 지키면, 온갖 것 저절로 달라집니다. 저절로 달라지는데도 무슨 일을 하려는 욕심이 생기면. 이름없는 통나무로 이를 누릅니다. 이름없는 통나무는 욕심을 없애줍니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가 찾아들고 온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도덕경』 / 老子 원전, 오강남 풀이 / 현암사 / 174p) 


  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지로’ 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욕심’이다. 욕심은 세상의 리듬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의 리듬은 우리에게 항상 어긋남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실, 욕심이 있을 때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감은 없다.

  반대로 욕심을 제거하면 “고요가 찾아오고 온누리에 저절로 평화”가 깃든다고 한다. 우리는 욕심 없이 행할 때 ‘자연스레’ 행하는 걸 느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경우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 자체에 오롯이 기쁨을 느끼고 다른 욕심을 내지 않을 때.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는지 놀랄 정도로 내가 행하고 있었지만, 그 행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행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못 할 때가 있다. 그 자연스러움은 우리에게 ‘고요’와 ‘평화’를 준다.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행하는지도 모르게 행하는 것이 바로 함이 없는 경지다.

  그리고 그렇게 욕심을 내지 않고 행하면 “안 된 것이” 없고, “온갖 것 저절로 달라진다”라고 말한다. 이건 무슨 말일까. 우리가 욕심을 부릴 때를 보면 내가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가령, 책을 잘 읽고 글을 잘 써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된다든지 말을 유려하게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한다든지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만나지 못한다. 인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항상 ‘불만족’ 상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욕심을 제거했을 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책 속에 저자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글을 쓰면서 온전히 집중하는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와 관심을 두게 되는…. 등 온갖 것이 저절로 달라진다. 그리고 그럴 때 어떤 조건이 우리 삶에 들어와도 만족이 안 될 것이 없다.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해’라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어떤 나’가 되어도 만족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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