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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후기 (97/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글쓰기행자연 작성일21-02-04 10:48 조회237회 댓글0건

본문


안녕하세요, 마늘쑥쑥조 자연입니다.

청백전 시즌10이 끝나고 뒤늦은 후기를 올리려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던 시간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11권 가량의 이 소설을 장작 5시즌 (50주)동안을 해왔는데요! 기나긴 소설을 어떻게 읽을 엄두를 냈었는지^^ 

섬세한 결들을 따라 읽는 재미도 쏠쏠했고, 때때로 지루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잃시찾>을 읽지 않는 날이 오다니..!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신기방기!


저희 조는 3시즌에 (조)정희가 나가고, 5시즌에 명이가 나가고, 나머지 4명(자연, 호정, 소담, 다영)이 10시즌을 완주하였는데요!

청백전 중 "최다 인원"입니다! (흐흐)

같이 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만큼 기운차게 올 수 있었던 점도 있었고,

고정 멤버가 많다 보니 다른 세미나원을 모으는 일이나, 세미나원들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를 끝나고 후기를 쓰다 보니(민망),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습니다!

그럼 이제... 기억을 더듬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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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에 읽었던 부분에서는 소설의 막바지로 달려가서 그런지,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주인공들도 급(!) 늙어서 좀 당황하긴 했는데요.

프루스트가 시간의 흔적들을 생생한 말들로 묘사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예술가라고도 표현합니다.


시간이 우리의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어떠한 현상들을 만들어내는데요. 주름을 대지의 지층, 협곡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시간을 빗겨나가기 위해 화장으로 감추는 사교계의 여성들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시간을 빗겨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시간’은 인간의 단일성과 생명의 법칙을 존중하면서도, 이와 같이 외면을 바꾸어, 동일 인물의 연속적인 두 모습 속에 대단한 대조를 들이”민다고 표현을 하는데요. 어떻게 시간을 두고 이렇게까지 사유를 했는지, 대단!!!



오늘, 내가 본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질베르트까지도 변모시켜 버린 세월의 작용은, 살아남은 아가씨들을, 만약 죽지 않았다면 알베르틴마저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듯이, 내가 회상하는 모습과는 딴판인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을 게 확실하였다. 나는 나 자신이 그녀들에게 도달해야 할 일이 괴로웠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양을 바꾸는 시간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을 수정 못 하니까. 우리의 기억 속에 그대로 싱싱하게 남아 있는 것이 실생활에서는 이미 그 싱싱함을 잃었음을 깨닫고, 우리 마음속에서 매우 곱게 보이는 것, 극히 사사로운 욕망이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보고픈 욕망을 북돋우는 것, 이것에 우리는 마음 바깥에서는 접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인간의 변화무쌍함과 추억의 요지부동과의 대립보다 더 비통한 게 따로 없거니와, 이 대립을 타파하려면, 옛날 사귄 아가씨와 같은 또래의 아가씨, 다시 말해 딴 아가씨에게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도리밖에 없다.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권, 415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물질과 기억>에서 나왔던 기억과 추억을 다르게 보고 있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푸르스트도 구분하고 있는 지점인데요. 추억은 변하지 않는 기억이라고 보고 있고, 기억은 현재의 사건으로 계속해서 변형되는 어떤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여기서도 시간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삶과 요지부동인 추억의 대립보다 더 비통한 것이 없다면서 말이죠. 


절대 우리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시간을 통해 프루스트는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시간을 통해 연장된 현재를, 또 개입되는 과거를 생각하면서, 실제로 프루스트도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들& 콩브레 마을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을 통과한다는 건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특권이자 조건인 것 같은데요. 그 '시간'성을, 삶을 통해 사유한 프루스트. 저도 프루스트와 함께 기나긴 시간여행을 한 것 같네요!ㅎㅎ


마지막까지 읽고 고락(?)을 함께한 호정, 다영, 소담, 그리고 잃시찾을 쭉 함께한 서형! 

고마웠어요!! 덕분에 이 기나긴 여정을 올 수 있었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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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서

 

우리는 변화한다. 또 우리는 누구나 어김없이 늙는다. 11권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서사시의 마지막 부분, 이 소설의 주인공들도 나이가 들었다. 20, 30년이 지나고 주인공들은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변하기도 하고, 또 시간을 빗겨나간 것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프루스트는 나이 들어가는 이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늙음시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프루스트는 시간을 초월한 갖가지 실재를, 예술 작품에서 분명하게 하여, 지성의 빛으로 밝혀내기 위한 기획에 착수하려는 순간, 내가 시간이 지닌 이 파괴 작용을 발견했다(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 337, 국일미디어)고 한다. 프루스트가 발견한 시간의 파괴 작용이란 어떤 것일까?

 

#1 ‘늙음과 시간성, 생 루와의 대화

함께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가실까요?”라는 생 루의 물음에 젊은 남자하고 단둘이서 식사하러 가도 염려 없다고 생각하신다면이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관점에 서서 나이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얘는 어엿한 청년이지요.”라고 말하던 그 시기에 머물러 있던 것이다.

자신의 습관적인 대답에서 우리가 공포나 게으름 때문에, ‘늙음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남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달력을 보거나, 편지에 날짜를 적거나, 우리의 친구나 그들의 자녀가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시간이 흘러감을, 늙어감을 알지 못한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 여전히 그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문득 두려워진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것은 아닌지, 고민 없이 살았던 나의 게으름을 원망하게 된다.

 

지나간 세월의 형태 없는 빛깔에 잠겨 있는 인형들, ‘시간을 겉으로 나타내고 있는 인형들, ‘시간이란 보통 눈에 안 띄는데, 눈에 띄고자 육체를 찾다가, 어디서고 육체를 만나기만 하면, 그것을 붙잡아 거기에 시간의 환등을 비춘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 국일미디어, 329)

 

시간은 보통 눈에 안 띄게 다닌다고 프루스트는 말한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느낌일까. 우리에게 하루하루, 한 달, 일 년은 흘러가지만, 정작 시간이 우리에게 어떻게 머물러 가는지는 모른다. 잘 인식하지 못한다. 눈 떠보니 일주일이 지나가 있고, 어쩌다 보니 벌써 2021.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에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또 하나의 재밌는 시선. 프루스트는 우리가 시간을 살아간다고 보지 않고, ‘시간자신이 눈에 띄고자 할 때 육체를 찾아다닌다고 본다. 보통 눈에 안 띄게 있는다고 하니, 어쩌면 평상시에 우리가 시간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시간의 간택을 받을 때, ‘시간이 우리의 육체를 만날 때, 거기서 시간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주름살과 관절, 혹은 문득 찾아오는 세월의 무상함(?)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시간은 이렇듯 어느 순간 찾아와 우리를 깨운다. ‘시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왔는지, 우리의 공포와 게으름을 불러일으킨다.

#2 ‘시간의 변장술

소설 속 인물들이 나이를 먹었다. 화장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고, 화장을 안 함으로 완전히 딴사람(!)이 된 이들도 있었다. ‘시간은 육체를 만나면서, 변장술을 발휘했다. 꽤 오랫동안 동안으로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변장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조로’(早老)행 특급열차를 운행했다고 한다. ‘시간은 이렇게 사람을 파괴한다. 본디 모습을 변형시킨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데트의 경우에는 너무 변하지 않아 못 알아보았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을 계산해보아도, 지금 눈앞에 있는 오데트의 형상은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사교계의 다른 여인들은 시간의 변장술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어떤 부인들은 코 옆을 따라서 얼마만한 침식이 있었는지, 뺨 언저리에서 얼마나 거대한 충적토가 그 불투명, 불용해성 퇴적으로 얼굴 전체를 뒤덮고있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이루 말할 수 없었나 보다. 시간과 안간힘을 다해 싸워온 흔적들이 묻어나는 얼굴들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사교계에도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시간도 어찌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것,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그런데 한 인간을 구성하는 그러한 정신적 세포가, 그 개인 자신보다도 오래 간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게르망트네 사람들의 악덕이나 용기가 생 루의 몸 속에 그 자신의 성격의 기이하고도 퉁명스러운 결점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 국일미디어, 355)

 

시간이 자연스럽게 힘을 쓰지 못하는 영역, 우리의 정신적 세포다. 그 어떤 것보다도 질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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