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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30 청년학교에 오기 전까지
대학 졸업 전까지 1년을 앞두고, 충동적으로 1년 휴학을 신청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체험한 가장 급격한 변화는 역시 감이당 공동체에 접속하고 베어하우스에서 또래의 청년 백수들과 더부살이를 시작하게 된 사실이다. ^^
감이당&남산강학원 공동체에 접속하기 이전까지, 외부적으로 큰 사건을 겪지는 않았지만(예를 들면 차에 치여 버린다던가.) 내면적으로는 큰 감정의 요동을 겪었다. 14살에 처음 겪었던 -불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동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충동- 탐식과 소비로 애써 눌러 왔던 자기 파괴적인 감정들이 내가 억눌러 왔던 것 이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수재민이 홍수에 떠밀려 가듯이, 통제할 수 없던 스스로의 감정에 그저 떠밀려 가던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저 물질로서 주변의 공간 만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이 나에게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지난 번 이수영 쌤이 풀어주었던 니체의 언어로 말하자면, 삶을 소화 시키는 능력에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생리학적 장애).
정상적인 소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먹은 음식을 소화 시키는 과정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때 되면 먹고 자연스럽게 배설할 뿐이다. 소화 과정이 일일이 의식 되어지고 그 과정에서 불쾌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건 나의 정신(그리고 정신과 서로 영향을 주는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의식화 시키는 인간은 병리적인 위기에 처한 인간이다. 과거의 모든 감정들을 의식화 시키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사람은 새로운 자극(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 즉 스스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까지 오면, 외부의 모든 자극들은 자신에 대한 억압, 모욕의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고 인간은 자신을 학대하는 특정 대상, 자신이 비난할 상대를 찾게 된다.
2. 2030 청년학교의 수업과 공동체 생활
첫째 날 수업을 들은 것 만으로도, 이전부터 막연히, 어렴풋한 윤곽의 형태로만 인지해오던 내 안의 불안, 불만 그리고 부정적 충동의 감정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 해결은 그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수업의 내용에 비추어 내 안의 부정적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 부터가 이 청년고전학교가 내게 얼마나 필요한 수업이었는지를 증명해주는 훌륭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업 이상으로 내가 큰 가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2030 청년들의 감정과 생각 들을 공유한 경험이다. 그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나만의 것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는 '청년'이라는 하나의 세대가 지금의 시대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느끼는 경험이었고 그 변용이 각 개인의 성격, 특성,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시대는 물리적으로는 방 안에서, 정신적으로는 맞춤형 알고리즘 안에서만 살아도 생존과 활동이 가능한 시대다. 그런 시대라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보는 것들은 자신의 확장된 자아일 뿐이다. 이 자아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지금껏 몰랐던 나'로 발견된 자아가 아니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충동과 충족 만을 통해 무제한, 무작정으로 확장시킨 자아이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기술 및 공간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시대에 사람들은 역설적 이게도 각자 자신의 자아 안에 갇혀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새로운 정보의 압력(시대에 뒤쳐지고 있다는)에 굴해져서는 안 된다. 무작정 받아들이고 행동하기 이전에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생각해왔고 앞으론 어떻게 생각할 건지를 생각해내야 한다. 고래로부터 그 방법은 단 하나, 고전과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해내는 것이었다. 자기 안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청년들에게 이 수업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