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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학교 씨앗문장 평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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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학교 씨앗문장 평일반 1조

다른 맥락 속 너와 나의 연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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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나 작성일21-07-25 22:05 조회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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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글쓰기 학교 (수요반) / 낭송 전습록 / 2021. 7. 28 수 / 다나


다른 맥락 속 너와 나의 연결됨


‘모름지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어서, 천지간의 모든 것은 본래 나와 한몸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겪는 고된 고통과 해독은 그 어느 것이든 내몸의 절실한 질병과 통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왕양명, <낭송 전습록>, 북드라망, 2014, p.162


양명의 말씀을 읽고 2016년, 졸업을 앞두고 한창 바쁘던 시절 유투브를 통해 보게 된 17대 칼마파1)의 스탠포드에서의 토크가 기억났다. 수년간 이어져온 빠른 속도의 삶, 그와 함께 누적된 피곤함의 절정 속에서 접한 그의 말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는 당시 다른 몇몇 미국의 대학들을 순회하며 강연하고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모든 대화들을 통해 나에게 계속적으로 다가온 하나의 단어는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상호의존성 (interdependence)이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깨닫는다면 인류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었다.2)

양명은 천지간의 모든 것이 본래 한몸이어서 세상의 군자들은‘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같이 보고, 나라를 한가문과 같이 여겨 천지만물과 한몸’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덧붙여‘옛사람들은 … 굶주림에 빠진 백성들 보기를 자기 자신이 굶주림에 빠진 것처럼 보았으며, 한 사람이라도 뜻을 얻지 못하면 마치 자기가 도랑에 밀어넣기라도 한 것’같다고 말하였다.(p. 163)

십여년 전, 잦은 단식으로 많이 예민해진 몸을 갖고 한동안 살았었다. 단식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던 이유는 평생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되던 상황에서 단식을 통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3) 그런데 이러한 애정이 집착이 되어서 나중에는 몸이 많이 약해졌고 환경에도 굉장히 민감해졌다.4) 이때 나는 상호연결성을 완전히 다른 맥락과 성격의 측면에서 경험했다. 즉 자타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한 현자들의 자비와 연민의 의식 상태에서가 아닌, 엄밀한 자타의 구분 속에서 내적으로 경험되는‘나 아닌 것’이라 규정 지은 모든 것을 분별하고 밀쳐내려 바둥거리는 상태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군자들은 하나됨을 통해 자비를 실현했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안에서 상대의 아픔을, 세상의 괴로움을, 예를 들면 다음날 만나기로 한 친구의 허리 통증을, 크림숩을 먹으면서 인간을 위해 반복되는 임신과 자식들의 죽임을 당하며 젖을 짜내야하는 젖소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까 고민하며 수년을 씨름하며 보낸 것이다.5) 최근까지도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나'라고 상정하고 접근해왔는데 이번에 전습록을 읽으면서 내가 크게 잘못하였음을 깨달았다.

양명이 말씀하시는‘천지간의 모든 것은 본래 나와 한몸’임을 알고 상대의 아픔과 부족함을 상대에게서 보지 않고 내 안에서 본다는 것은 작은 자아 (self with small s)의 관점에서는, 즉 양지를 실천하지 않고 사사로움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작은 자아의 입장에서, 사사로움(나만의 안위)으로 눈이 멀은 상태로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아무리 온 몸으로 세상과 상대와 연결됨을 ‘잘’ 느낀다한들 그 연결됨은 하나됨을 통한 세상을 위한 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었고 이기적, 그리고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편안함과 고요함6)을 추구하는 것에 머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더욱 깊어가는 괴로움 속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분투를 계속해온 것이었다.

양명은 ‘배우는 사람들이 성인됨을 배우는 것은 단지 사사로운 욕심을 제거하여 천리를 보존하는 것’(p. 121)이며 ‘한 푼의 사사로운 욕심을 줄이면 그게 바로 한 푼의 순수한 천리를 회복한 것’(p. 123)이라고 하셨다. 내 안에 나라는 생각과 나만을 위하는 사사로움이 조금씩 줄어들며 그만큼 순수한 천리를 회복하면서 ‘진정한 자기’가 발휘된다면 그때는 비로소 밖과 안, 타자와 나의 경계의 사라짐 속에서 진정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1) 티벳 불교는 크게 네개의 종파가 있는데 칼마파는 그 중 하나인 칼마 카규파의 리더이다. 달라이 라마는 겔룩파의 리더이다.


2) 물론 이는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니고 영어권에게 신선한 가르침도 아니었다. 달라이 라마 존자께서 당면한 사회적 이슈들을 언급하실 때 환경과 인류의 interdependence에 대해 자주 말씀해오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지한 자세와 말들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달라이 라마는 칼마파가 티벳으로 부터 망명해서 인도에서 정착하는데, 그리고 뿌리 깊은 칼마 카규파 내부 권력 다툼 문제들 사이에서 칼마파를 돕고 지지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  <The Dance of 17 Lives: The Incredible True Story of Tibet's 17th Karmapa> 참고.


3)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무릎 통증은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고 MRI를 촬영해 보아도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통증은 견디기 어려웠고 날이 갈수록 더욱더 심해지고 있어서 집 안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었다.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었던 당시 단식을 원했던 이유는 무릎 통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10대에 경험했던 단식이 주는 맑은 정신과 몸이 너무나도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 몸이 무거우면 혼자서 며칠간 양배추만 조금씩 씹어먹곤 했다. 지금도 왜 그때 많은 채소들 중에서도 양배추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며칠 먹고 나면 몸이 다시 밸런스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었다.) 아픈데 단식은 말이 안된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주일의 생수단식과 한달의 보식을 잘 마무리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무릎 통증 또한 서서히 완화되었다.


4) 사실 몸이 많이 민감해지는 것이 시골에서 살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했다. 당시 Bodytalk System 등 여러 치유 메소드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극도의 민감함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시카고와 런던으로 이어지는 대도시에서의 삶 속에서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5) 모르거나 ‘조금은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식사를 할 때 유제품을 섭취하게 되면 매번 극도의 우울함과 슬픔을 느꼈고 친하거나 곧 만나게될 친구들의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경험하곤 했는데 당시에는 그 감정의 파도와 고통에만 연연하며 이 모든 것을 ‘나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었다. 이 상황을 좀더 큰 그림 속에서 보게 되기 까지는, 즉 젖소와 친구의 상황과 내가 정말 무엇을 경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가슴 깊이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6) 양명 선생님의 ‘편안함과 고요함’에 대해서 언급된 부분은 책의 143 쪽을 참고. 이 글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또한 ‘편안함과 고요함 등에 의지해서 감정이 움직이지 않은 중의 상태를 찾고자’하였기에 전반적으로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글에 많은 미흡한 점들이 있지만 다른 일들을 하는데 계속 글쓰기 과제가 머릿속을 맴돌아 (아무래도 명쾌하지 못한 전개/논리적 문제들 때문인듯) 제출을 미리하게 되었습니다. 수요일 수업 이후 더 보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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