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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일(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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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참새 작성일21-07-27 10:31 조회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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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일

오직 지금 이 마음에 한 올의 치우침이라도 생겨날까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이니, 공무와 송사 등이 처리되는 동안에도 진실된 배움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실제 일들을 떠나 배움을 얻고자 한다면, 그거야말로 허공에다 헛수고를 하는 일일 뿐이다. (문성한 풀어읽음, 왕양명 지음, 전습록, 북드라망, p.26)

전습록에서 왕양명은 계속해서 말한다. “격물치지하라. , 사물에 나아가서 이치를 공부하라. 사물의 이치가 곧 마음이다. 마음에서 사사로움을 제거하라.” 공식처럼 단순한데도 나는 자꾸 뫼비우스의 띠같은 논리 안에서 길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들릴 뿐 사실은 어려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하급관리에게 저렇게 강도 높은 도덕을 요구하는 왕양명에게 시비를 걸고 싶었다. 시키는 일만 하면서 겨우 먹고사는 하급관리에게 격물치지하라고? 생계가 달린 사사로운 삶의 현장에서 사사롭지 말라고? 나는 그 불편한 마음을 격물치지하는 마음으로 따라가 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의 요란한 부부싸움, 낯선 동네로의 이사를 반복하면서 살았다.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빚독촉에 시달리는 엄마가 불쌍했다. 자주 아팠던 엄마가 어딘가로 떠나버리거나 죽을까봐 무서웠었다. 이삼십대는 생활이 안정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으로 밥벌이에 아등바등하며 보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해야만 하는 것하고 싶은 것사이에서 지독할 정도로 착실하게 전자를 선택하며 살아왔다.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 나는 밥벌이에 성공한, 기대 이상으로 인기없는 중년 교사가 되어 있다. 2018년 이후로는 줄곧 엄마가 없는 삶에 적응 중이다. 열심히 살아야 할 궁극적인 삶의 이유가 사라진 느낌이다. 엄마는 시간도, 돈도, 아끼면 똥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가셨다. 나는 다르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막막하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삼십대 어딘가에 나는 나를 두고 온 것만 같다. 나는 나를 수단으로 만드는 데 명수다. 밥벌이의 수단.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수단. 그래놓고 정작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마음 속에선 슬슬 부아가 난다.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울컥 눈물이 난다. 나는 늘 내가 뒷전이다. 계속 뒷전에 있으면 부아가 나고, 앞으로 나서 보려고 하면 불편하고. 이게 내가 빠진 딜레마다.

그런 일상에 지쳐서 글쓰기 학교까지 온 나에게 왕양명은 실제 일들을 떠나 배움을 얻고자 한다면, 그거야말로 허공에다 헛수고를 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찌질한 일상고상한 책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한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수단이니, 목적이니, 따지지 말고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수단이 되지 말라고. 하급관리도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이것은 독설인가? 격려인가? 둘 다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나한테 달렸다고 한다.

밥벌이를 위한 주 5일의 삶과 토요일 2시간 동안 내가 논하는 인문학. 그사이에 존재하는 이 크나큰 간극. 그걸 욕하면서 왜 가만히 있냐고 묻는다. 밥벌이와 인문학,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 다리를 놓으라고. 그 어려운 일을 나보고 하라고 한다. 몇 스푼 정도의 마음의 위로를 기대한 나에게, 거대한 건설공사의 삽을 뜨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뭔가 더 궁시렁거리고 싶다. 그러나 이미 나는 더 이상 열심히 살았다.’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강 앞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다. 삽질을 시작해야겠다. 일상 어디서든 작고 소심하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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