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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교시 후기를 맡은 수경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남산강학원으로 향하는데 봄이 일찍 찾아 온 듯 따뜻하여 기분 좋게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발제문을 읽어주신 용제샘은 ‘진정에 대한 순찰사에게 답함’에서 발제하였습니다. 연암이 군수로 일하고 있을 때 흉년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구휼 정책을 편 내용입니다. 자신이라면 해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지만 연암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초점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적이었던 사진을 서신을 통해 공적으로 만들거나, 식량을 적당히 나눠주어 사람들이 요행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등 근본에 충실하면서도 문제를 최소화하는 해결 능력에 주목하였습니다. 글을 깊이 이해하고 풀어주어 인상 깊었습니다.
은샘샘은 치암 최옹의 묘갈명에서 발제하였습니다. 최옹이 살아 생전 지위를 망라하고 남을 돕던 모습을 묘사한 글입니다. 은샘샘께서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 나를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는데요. 이타적인 삶이란 어떤 삶인지 느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옹은 타인에게 자비로운 만큼 자신에게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저는 주공탑명에서 발제하였습니다. 경전의 이야기를 새롭게 표현하여 현랑의 청을 거절한 글입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발제문과 다소 거리가 있었습니다. 연암이 어떠한 얘기를 하는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문샘께서 글을 쓸 때 생각을 글로 쓰라고 하셨는데요. 막상 써보니 생각이 잘 표현되지 않았어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암의 책을 읽을 때 저는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이, 형수, 친구의 묘지명, 지인들의 묘갈명이 사소해 보였지요. 내가 연암이었다면 나의 누이, 나의 가족, 나의 벗, 나의 지인의 묘갈명이었을 테니까요. 이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볼 때 화자나 주인공의 입장에서, 혹은 그들의 가족의 입장 등 관계 속에서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치옹의 가족이었다면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빠가 치옹처럼 살아줘서 자랑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자리에서 보는지에 따라 입장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좋은 글은 나의 사고를 확장시켜주거나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아름다운 문체를 가지고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연암의 글이 그렇다고 하는데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연암의 생각과 표현을 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