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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학교 2교시 네 번째 시간(23.3.11)에는 곰샘의 『몸과 인문학』에서 ‘다른 노년의 탄생’을 필사해 보았습니다.
줄자샘이 문단에서 동일한 단어를 반복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에 따라 다른 단어로 바꿔 쓰는 곰샘의 어휘력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눈으로 읽을 때는 휙하고 지나가서 몰랐는데 이렇게 필사를 해보니 한 문장에서 A라는 단어가 그 다음 문장에서는 A’로 바뀌는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문장에서 그 단어와 어울리는 적절한 다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문장이 풍성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양기가 있다가 아니고 양기 덩어리라고 쓰셨고, 노인은 음기가 있다가 아니고 음기가 충만하다고 쓰셨습니다.
필사를 하고 전체적으로 단어 중심으로 보니 앞 문단에서 쓰인 단어가 다음 문단에서 다른 말로 변주되는게 보였습니다. ‘동안 열풍’은 ‘노인들에게 젊음을 흉내내도록 유도한다’와 연결이 되었구요. ‘연륜과 지혜가 깊어진다’, ‘연륜과 지혜를 순환시킨다’는 깊어진 연륜과 지혜를 순환시키는 데 까지 가야 하는 구나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적절한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은 글에 힘을 주면서 글을 살아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네트워크가 아니라 ‘열정의 네트워크’라든가 ‘청년들과 떳떳하게 교감할 수 있는 다른 노년의 탄생’ 의 ‘떳떳하게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 떳떳한 노년의 모습을 그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떳떳함이 나이 드는 것과 연관되어 수치가 아니라 자랑스러움으로 연결되고 이것은 공부를 통해서 가능하다라고 다가왔습니다.
이번 글은 A4 한 장 분량이었는데요. 이 한 장의 글에 현재 자본주의, 조선시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철학자와 현대의 프랑스 철학자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는데요. 이런 자연스러움은 그냥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문단을 시작할 때 쓴 문구들이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를 언급할 때는 ‘상식적인 말이지만’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철학자 얘기에서는 ‘양생적 차원에서 보자면’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후기를 쓰다보니 문득 글을 쓴다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내 독백이 아니라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진정 타자와 소통하고 싶나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내 독백이 아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들었는데요. 타자와의 소통은 어째든 나와 타자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연결성으로 지금의 나와 이 시대 그리고 다른 시대를 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