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발제문의 형식 관련하여, 순식샘이
좋은 코멘트를 주어서 정리합니다.
. 제목에는 문장부호나 물결 같은 표시하지 않기
. 소제목의 제목을 그대로 전체제목으로 가져가지 않기
. 띄어쓰기와 오타 검사하기 (검사프로그램 사용시 편리)
. 책 제목에 꺽쇠 표시하기
먼저 저(희영)의 발제문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저는 <족손 홍수에게 답함>이라는 글을 선택했습니다. 발제문을 여러 번 썼었지만, 항상 긴장이 되어서... 질문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번에 제 발제문에 대해서 여러 샘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과정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 글의 문제를 명확히 알 수 있었어서, 다음 번 글을 쓸 때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발제문을 쓰다가 끝까지 해결하지 못해서, 마지막에 두 문단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을 하였는데요. 읽는 샘들은 ‘내가 이 부분을 고민했다는 것도 모를 것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삭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결하지 못한 부분에서 질문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그 부분들을 끝까지 더 물고 늘어져야 했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가 풀지 못한 첫 번째는 ‘가난한 선비의 억울함’이었습니다. 저는 장수와 비교하여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데서 오는 불공정함이 억울함을 만들었다고까지만
갔는데요. 이 부분이 문샘 말씀대로 선비를 너무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렸고, 저 스스로도 기존에 공부하며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는데... 일단 연암의 글에 충실하게
해석한다는 전제하에 그냥 거기에서만 멈춰 버렸네요.
두 번째는 ‘억울함의 해결방법이 글공부인데, 그 글공부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을 때의 문제점’이었습니다. 벼슬이라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공부 기본을 계속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 점이 끝까지 명확하게 풀리지
않아서 글에 담지를 못했습니다.
다음은 처음 발제를 해보는 연우샘의 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연우샘은 <이몽직애사>를 가지고 글을 써 오셨는데요.
글의 제목이 ‘죽음에 동참하는 삶이면, 연암이
보는 죽음에 동참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아니면 연암의 글을 통해 본 연우샘의 죽음에 동참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우샘은 ‘제기한 질문을 글에서 마무리하기’를 앞으로의 숙제로 받으셨습니다.
“대범 사람의 삶은 요행이라 할 수 있는데도 그 죽음이 공교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어째서인가?”(248쪽)
마지막은 발제문 낭독 후 큰 박수를 받으신 진환샘의 순서였습니다. 진환샘은 <김우상에게 올림>을 가지고 글을 쓰셨습니다. . 진환샘은 연암의 글을 읽어가는 과정에서의 변화를 ‘쓰레기-보물’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글을 써 주셨는데요. 처음 발제문을 쓰셨음에도 불구하고, 글이 재미있고 잘 읽히게 썼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샘께서 발제를 하기로 한 연암의 글을 매개로 하여 글을 써야, 스스로도 얼마나 내용적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있고 다른 학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세부 내용에서는 복어알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문샘께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연암은 고위관직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힘이 있다는 점에서 천하의 진미인 복어알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복어알에 독이 있는 것처럼, 권세 있는 자리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 주셨습니다.
벌써 1학기 5주차가 지났네요.
토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