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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스승’을 만나다 | 단테, 『신곡-연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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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4-13 19:01 조회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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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스승’을 만나다




원자연 (글쓰기학교 고전평론반)


“이 사람은 자유를 찾아서 가고 있소.”(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연옥편」1곡, 71~72행, 민음사) 연옥 입구를 지키는 카토를 만났을 때,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소개하는 말이다. 인생길 반 고비에서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을 떠돌던 단테는 「연옥편」에서 어느새 ‘자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연옥은 단테에게 어떤 자유의 길을 보여줄까? 단테는 이 여정에서 ‘자유’를 어떻게 찾아가고 있을까?



든든한 뒷배, 스승 베르길리우스


단테는 지옥을 통과하면서 온갖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는 영혼들을 보았다. 끔찍한 모습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에 벌벌 떨기도 한다. 이랬던 단테가 연옥에 왔다. 연옥은 영혼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정화해가는 곳이다. 지옥에서는 고통받는 모습들을 ‘바라봄’으로써 죄의 실상을 봤다면, 연옥에서는 단테 자신도 연옥의 영혼들과 길을 걸으며 7개의 P자를 지우는 정화의 과정을 함께 ‘겪어’나간다. 정말 이야기의 시선이 한껏 당겨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연옥편」에서의 단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어디로 향한 길인지 확신은 없지만,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의 자신감(?)이 좀 느껴졌다.



이 자신감의 또 다른 원천은 든든한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존재다.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여정에서, 그 길을 함께 가는 스승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했을까.


연옥의 입구에 들어서기 전의, 한 장면이다. 연옥문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대기자들이 조소 섞인 말을 던진다. “아마 얼마 안 가 주저앉고 싶을걸!(4곡, 99행), “형제여, 올라간들 무슨 소용인가? 문 앞에 앉아 있는 하느님의 천사가 내가 들어가 참회하는 것을 막을 텐데.”(4곡, 127~129행)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들의 한탄이다. 아직 그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우리 안의 수많은 추측과 다르지 않다. ‘아마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어차피 가서도 막는 자들이 있을 거야’라며 음모론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어쩜 이리도 똑같은지. 이럴 때, 먼저 이 길을 가보았던 ‘스승’이 우리를 붙잡아준다.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 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사람이란 생각에 생각을 겹쳐 놓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마련이니, 힘이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가겠습니다.”라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의 낯빛으로 서 있었다.

연옥편 5곡, 10~21행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라고!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의 여정 내내 이렇게 조언해주고, 단테를 다그쳐주기도 하고, “길을 잘 가고 있으니, 뒤처지지 말고 힘을 다해 앞으로 가라”고 격려해주기도 한다. 이 힘으로 단테는 두려움을 마주하고, 영혼들과 대화를 하며 배워간다. 또 이 힘으로 연옥을 오르며, 자유를 향한 구도의 길을 걸어간다.



Adios Vergilius, Hola credenza(믿음)!


그렇게 이들은 ‘이성’으로 갈 수 있는 끝까지 함께한다. 정죄산 꼭대기 숲에 도착했을 때, 베르길리우스는 말한다.


너의 기쁨이 너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이젠 내 말이나 눈짓을 기다리지 마라! 너의 의지는 곧고 바르고 자유로우니 그 뜻대로 해야 할 것이다.

연옥편 27곡, 131, 139~141행


이들은 영혼들의 죄와 벌을 겪으며, 우리가 왜 ‘하늘의 선’을 버리고 유혹에 빠지는지 ‘지성’으로 살펴본다. 단테는 교만의 단지를 지나면서 자신의 오만을 돌아보고, 분노의 단지를 지나면서 이 세상이 왜 사악함으로 뒤덮여 있는지 영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베르길리우스의 지성을 빌려 정죄의 과정을 함께 겪는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떻게 일곱 단지의 죄를 만들어내는지’를 지성으로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단테는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거다.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서 단테에게 곧고 바른 의지 즉,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렇게 자신의 의지 안에서 ‘믿음’이라는 새로운 스승을 만나게 된다. 단테는 이제 이 믿음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의 빛을 믿고 자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믿음’은 스승 베르길리우스를 떠나보내고, 베아트리체를 만나 속죄를 하던 순간, 내면의 ‘빛’으로 자리 잡는다. 더없는 부끄러움을 통해서! 그 순간으로 이동해보자.



베아트리체 앞에서의 정죄, 그리고 ‘믿음’


지고한 덕의 힘을 가진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순간, 단테는 자연스레 고개가 숙어지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신비와 권능에 감복하여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하며, ‘아, 내가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었을 수 있겠구나…!’를 알고, 그 원리를 탐구했던 지성의 과정. 이 과정을 이성적으로 살펴보고 애썼던 시간이 무색하게, 지고의 덕으로 살아가는 존재 앞에서 그는 한순간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단테는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멀거니 서 있었다. 말을 하려고 해보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고……. 가까스로 “눈이 달린 귀라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답했다. 결국 그는 참회의 눈물과 한숨을 터뜨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완전한 몰락을 위해 베아트리체는 계속 밀어붙인다. “우리 마음을 이끄는 그야말로 유일한 선을 사랑하도록 그대를 바로잡아 주던 나를 향한 욕망 속에서, 무슨 웅덩이들이 가로막았기에, 무슨 사슬을 만났기에, 나아가는 길에서 그렇게 희망을 버려야 했나요? 어떤 이득이나 어떤 현혹이 다른 자들의 이마에서 보였기에 그들을 그렇게 부러워했나요?”(31곡, 22~30행)


단테는 이윽고 힘겹게 고백한다. “당신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때 세상이 내민 허망한 즐거움이 나를 방황하게 했습니다.”(31곡, 34~36행) 스스로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한다. 세상의 허망한 즐거움을 쫓았다고 말이다. 단테는 일곱 단지를 지나오면서 각각의 죄와 벌을 알고 있었다. 또 함께 겪었다. 교만, 질투, 분노, 탐욕 등 온갖 죄들의 원인이 ‘잘못된 사랑’, ‘세상의 헛된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지성’을 통해 알게 되었었다. 하찮은 장난감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정죄산 꼭대기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전까지는 완전한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없었다. 함께 겪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도 보고, 이마의 P자도 지워나갔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죄를 실토(?)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을 스스로 알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죄를 씻을 수 있고, 가벼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하여, 믿음은 지성의 영역이 될 수 없다. 자신의 모습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 마음이 확 터져 나올 때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 이 순간, 자유의 길이 열린다. 자기 자신의 믿음을 의지하며,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뉘우침의 고통이 아프게 찔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홀린, 그녀가 아닌 모든 것들이 이제는 너무도 혐오스러웠다.”(31곡, 85~87행)라고 말한다. 이제 정말 하찮은 장난감을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단테는 베아트리체 앞에서 참회하고 죄를 씻는다.


연옥의 ‘정죄’는 자신의 죄를 알고 벌을 받음으로써 죄를 씻는 과정이다. 여기서의 벌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가 아니라 자기 숙제를 철저히 행함으로써 구원으로 가는 길이다. 연옥이 자유를 향한 구도의 길인 이유다. 자기 자신의 숙제를 충실히 해나갈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차오른다.


내 안의 ‘믿음’이 생기는 것은, 내 안에 ‘스승’을 갖는 일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옆에서 해줬던 것처럼, 단테는 자신의 ‘믿음’에 묻고, 의지하고, 배우며, 천국의 길을 걷지 않을까?




2021. 4. 10. / 글고평 1학기 ; 신곡 연옥편 중간글쓰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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