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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고집하기’를 막아주는 청정한 믿음 |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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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10 20:14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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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고집하기’를 막아주는 청정한 믿음



조한결 (청공자 영성탐구)


1. 바른 길로 가신 님을 오해한 꼬깔리야


한 때 부처님의 두 위대한 제자 싸리뿟따와 목갈라나가 꼬깔리야라는 사람과 함께 조용히 우기를 보내고 싶어 그를 찾아왔다. 조용히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자신들이 이 마을에 왔음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꼬깔리야와 약속을 했다. 그런데 꼬깔리야는 우기가 끝나자 약속을 어기고 주민들에게 두 제자가 왔음을 알렸다. 그냥 알린 정도를 넘어서 위대한 두 제자가 왔는데 왜 공양하지 않느냐며 주민들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왜냐면 주민들이 두 제자에게 공양하다 보면 겸사겸사 자기(꼬깔리야)도 공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양을 받고 싶으면 자기가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공양해주길 기다리면 될 텐데, 굳이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들먹여가며 사람들에게 공양을 요구한 것을 보면, 아마 꼬깔리야는 사람들에게 공양 받기엔 능력이나 성품이 부족했었나 보다. 그래서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이용하여 공양을 받으려고 한 것 같다.



주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일부러 공양을 안 한 것도 아니고 두 제자가 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는데, 난데없이 왜 공양을 안 하냐고 자신들을 욕하는 꼬깔리야에게 항의했다. 그러면서도 공양은 드리고 싶었기에 서둘러 버터와 사탕, 의복을 준비해 두 제자에게 공양을 올렸다. 꼬깔리야가 벌인 소동을 알고, 두 제자는 주민들의 공양을 받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방문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공양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주민들이 공양하게 된 원인이 꼬깔리야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제자의 방문을 기회로 한 몫 챙기려 했던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꼬깔리야는 실망했다. 그리고 인연담에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자기 계획을 망쳐놓은 두 제자에게 앙심을 품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두 제자는 오백명 정도의 수행승들과 함께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순차적으로 여러 나라를 유행하다가 꼬깔리야의 마을에 다시 오게 되었다. 주민들은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많은 공양을 올렸다. 이번에 두 제자는 마을 사람들의 공양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공양품을 모두 승단에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꼬깔리야는 ‘장로들이 예전에는 소욕지족이었는데, 지금은 탐욕에 사로잡혀 악한 욕망이 있는 자들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비난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뭘까? 두 제자가 공양품을 모두 승단에 나누어주었다는 사실은 전해 듣지 못해 오해했기에 비난했거나, 또는 승단에 나눠주었다는 것까지 알았음에도 어떤 이유에서 - 이를 테면, 두 제자에 대한 앙심 때문에 - 괜한 모함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꼬깔리야가 어떤 마음에서 두 제자를 비난했을지 이후 이어지는 세존과의 대화를 통해 추측해보았다. 꼬깔리야가 세존을 찾아가 두 제자가 나쁜 욕망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세존께서는 “(...) 꼬깔리야여,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져라.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자애롭다.”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청정한 믿음이란, 두 제자가 자애로운 사람임을, 곧 탐욕으로 공양품을 차지하지 않고 나눌 사람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애초에 두 제자의 행동을 탐욕스러운 것으로 오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혹 오해하더라도 내 생각이 오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었을 것이다.




2. ‘미움 고집하기’를 막아주는 청정한 믿음


때문에 이 경에서 누군가를 오해하거나, 오해해서 비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세존께서 두 제자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지라고 세 번이나 말했음에도 고깔리나는 끝까지 자기의 오해와 비난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저 오해하고 비난하는 것과 ‘적의’의 차이인 것 같다. 이 인연담의 맥락에서 적의란, ‘누군가에 대한 미움, 비난을 결코 바꾸지 않는 아주아주 강한 고집’을 뜻한다.


만약 꼬깔리야에게 상대에 대한 청정한 믿음이 있었다면, 또 세존의 말씀을 듣고 나서라도 이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면 적의를 품게 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꼬깔리야에게 두 제자에 대한 청정한 믿음을 가지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신 것 같다. 요컨대 내가 오해나 미움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상대가 바른 마음으로 행동했을 것이라는 믿음인 것이다.




2021. 6. 5. 청공자 영성탐구 / 정견수련 2학기 4주차 ; 숫타니파타 꼬깔리야의 경 인연담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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