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관계의 양면을 인지할 것 | 옥타비아 버틀러, 『킨』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6-29 19:42 조회157회 댓글0건

본문


관계의 양면을 인지할 것


이유진(청공자 용맹정진)


나를 두고 떠나지 마!


작품 중 루퍼스가 유독 많이 하는 대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떠나지 마!”이다. 루퍼스는 대체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다나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였다. 루퍼스의 이런 다나에 대한 애착은 단지 다나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만 은 아닐 테다. 왜냐하면 ‘떠나지 마’라는 말에는 ‘너가 없으면 외롭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 기 때문이다. 1800년대 인물인 루퍼스는 분명 자신의 시대에서 많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니 다나처럼 언제 나타나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물보다 그의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인물은 어디에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루퍼스는 다나에게 필요 이상의 애착을 가진다. 그것은 단지 ‘생명의 은인’과는 다른 감정적으로 얽혀있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루퍼스에게 다나는 어떤 존 재였기에 그 정도로 집착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루퍼스와 다나의 관계는 어째서 죽음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었나?



다나와 루퍼스


“당신이 나를 떠나는 꿈을 꿨어.”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케빈이 들었다는 말과 비슷했다. 케빈의 의심을 일깨웠던 그 말. “나 는 떠나.” 조심스럽게 말했다. “떠나야 해. 난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야.”

“아니, 여기 사람이야! 내가 아는 한 그래. 하지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당신은 떠났 다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지. 하지만 악몽 속에서 당신은 나를 도와주지 않고 떠나. 나를 곤 란한 처지에 내버려두고, 아픈 채로, 어쩌면 죽어가는 채로 두고 걸어가버려.”

옥타비아 버틀러, 『킨』, 비채 pg.496~497


다나와 루퍼스의 관계를 따져보자. 다나는 루퍼스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루퍼스의 생명이 위협을 느낄 때마다 1800년대로 불려와 그를 구해주었고,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지면 다시 1976년으로 돌아갔다. 즉 루퍼스는 다나를 언제든지(약간의 위험이 따르지만) 불러올 수 있었고, 다나 또한 루퍼스에게서 언제든지(마찬가지로 위험이 따르지만) 도망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와일린 저택의 모든 사람을 소유한 루퍼스가 유일하게 소유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나였다. 또한 둘은 서로에 대해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루퍼스는 다나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힘을(동시에 다나를 사회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그리고 다나는 루퍼스를 죽음 속에 방치할 수 있는 힘을(동시에 루퍼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루퍼스가 잔혹한 행동을 할 때에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녀는 루퍼스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여차하면 루퍼스가 절대로 찾지 못할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었다. 결코 노예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평생을 루퍼스 손아귀에서 놀아나야했던 앨리스의 절박함과 억압에 대한 경각심이 다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즉 그녀의 벗어날 수 있는 자유는 그녀가 루퍼스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흑인들에 관해서는 늘 소유라는 일방적인 관계만 맺어왔던 루퍼스에게 그런 자유에서 발생한 너그러움은 특별한 것으로 와닿았을 것이며, 그런 특별함은 루퍼스의 애착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루퍼스 또한 서로의 관계가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다나에게는 다른 흑인 노예보다는 나은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관계의 양면을 망각하게 되었을 때


처음엔 루퍼스도 다나도 서로 간의 권력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관계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차츰 잊어갔다. 그런 망각에는 그들 사이의 시간 흐름의 차이가 큰 역할을 하였다. 루퍼스의 경우 다나가 없는 세월을 더 오래 겪었다. 그동안 그는 1800년대의 사회 제도에 너무 쉽게 노출되었다. 조금만 교활하게 행동한다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고, 늘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의 행동을 용서해주는 다나를 노예제라는 방식을 통해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미쳤을 것이다. 다나가 루퍼스를 용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서 말이다.


다나 또한 그 권력 관계를 종종 (루퍼스만큼은 아니지만)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1976년에 오래 머물지 못하였고, 고된 1800년대의 사건을 연속적으로 경험하였다. 그만큼 그녀는 1800 년대의 상황에 쉽게 동화되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힘을 가졌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었던 용서를 노예제에 따른 순응과 혼동하게 되었다.



즉 그들은 관계의 양면을 잊어갔던 것이다. 루퍼스는 자신이 다나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과 다나가 자신을 죽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되었고,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모든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음과 자신에게 루퍼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망각이 아니다. 익숙하게 힘을 발휘하는 방식으로만 힘을 쓰게 되면서 힘의 이면을 외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관계의 한 면만을 극단적으로 발휘하게 되며, 모든 신뢰는 무너지게 된다.



분리될 수 없는 힘임을 알 것



관계는 결코 하나의 형태로만 발휘되지 않는다. 나에게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상대방 또한 나를 지배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지배하는 순간 마찬가지로 내게는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을 힘도 주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망각한다.


루퍼스의 경우에도 그랬다. 그는 다나가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었던 너그러움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다나의 자유와 너그러움이라는 두 힘의 양면적 관계를 무시하고 그녀의 자유는 제거한 채 오직 자신에게 너그럽기만을 바랐다. 다나는 그런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는 결코 좋게 끝맺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힘의 양면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일 루퍼스가 다 나가 가진 힘의 양면을 인정했다면, 그리고 자신의 힘이 소유가 아닌 보호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더라면 그들의 관계는 다르게 끝났을 것이다.



2021. 6. 30. / 청공자 용맹정진 / 2학기 용되기 수련 8주차 / 『킨 발제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