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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관계 맺고 싶다면 명명하라 l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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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8-05 23:05 조회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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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관계 맺고 싶다면 명명하라


성다현(청공자 용맹정진)



관계 맺지 않는 삶


나는 늘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건 거창한 나의 꿈, 혹은 삶의 목표에 관한 말이 아니다. 정말 일상적인 삶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사실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별생각 밥을 먹고, 무기력하게 학교에 가고 그냥 통상적인 사회 모습이 공부하니까 공부를 했다. 내가 그 속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을 좋아했나보다. 엄마, 아빠, 언니, 선배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 호칭들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해 보였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빠는 자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돌봐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고, 언니, 선배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손아랫사람이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호칭과 거리가 멀었다. 가족 내에서 누군가의 손윗사람이 되어본 적 없으며 후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관계가 있어야만 불리는 호칭이 아닌 고유명밖에 없었고 성다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나는 늘 내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 세상에서 대체 왜 존재하나 싶은 생각까지 뻗어나가 우울해지기도 쉬웠던 것 같다. 다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나에게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 등장하는 이름에 관한 서술은 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야생의 사고』는 토테미즘, 열대의 원주민들이 관계 맺는 법에 관한 책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관계의 요소는 다양하지만 나는 7장 종으로서의 개체를 통해 ‘명명’,‘고유명’,‘관계명’ 등 원주민들의 이름과 호칭에 관해 이야기 해 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름’이라는 요소가 원주민들과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이 ‘이름’이라는 공통된 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비교, 분석하기 편하고 내 삶에서 예시를 찾기도 쉽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7장의 ‘고유명’과 ‘관계명’을 통해 그들은 어떤 관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명명’을 통해서 그 어떻게 관계를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렇게 원주민들의 방법을 살펴본 후 이를 통해 알게 된 내용으로 내 삶을 바라보고자 한다.


고유명 또한 관계명이다


친명과 상명은 친족 관계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관계’명이다. 본명은 이 성질을 가지지 않으므로 그 관점에서 말하면 위의 두 이름 유형에 대립한다. 본명은 다만 ‘자기’를 다른 ‘자기’와의 대비로서 규정하는 것뿐이다. 본명에 내포되어있는 ‘자기’와 ‘타자’와의 이 대립은 그 대신 친명과 상명과의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 친명은 고유명을 포함하여 본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다른 자기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가 있다.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한길사 出/p.282)


우리는 보통 이름을 개인의 단독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이름은 개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관계를 알려주기도 한다. 일단 이들의 친명과 상명은 우리의 호칭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니’라는 호칭은 관계명이다. 왜냐하면 손아랫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위 인용문처럼 본인의 이름이라기보다 타자와의 관계를 표현해주고 있다. 현대 사회의 문명인들은 언니라는 호칭을 이름의 차원으로 끌어다 쓰고 있진 않지만, 원주민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고유명뿐만 아니라 관계를 지칭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관계가 그 사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친구는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며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서라는 위치는 책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고유명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고유하다’라는 인식은 유일무이함으로 인식되어 그 사람만의 것, 그 어떤 것과도 연관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고 현대 사회는 남들과 다른 나라는 표상에 갇혀 자신의 고유함을 고집하는 사회인 것 같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사회에서의 고유명의 취급은 다르다. 고유명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이름이다. 부족 전체 관계에 끼어들지 못한 자들이 받는 임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임시적이라고 해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토테미즘은 관계를 맺기 위한 분류체계이다. 고유명은 더 이상 분류될 수 없는, 즉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서 이름을 새로 붙일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부여되는 ‘역할’이다.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위치가 없음’이 그의 위치이고 고유명인 것이다. 인용문의 말처럼 고유명 또한 타자와의 관계를 표현한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 지어진 순간 나는 누군가와 분명히 관계 맺고 있다. 이름에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원주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 이름 속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내 이름을 구성하는 성(姓)은 ‘성(成)’씨 가문과 관계 맺고 있다는 증거이며 내 마지막 글자인 ‘현(鉉)’은 내 오빠들과 공유하고 있으며 형제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나는 나에게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못’보고 있었거나 ‘안’보고 있었던 것이다.


명명한다는 것


나는 관계를 외면하고 보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야생의 사고』에서 원주민들은 친명, 상명 등 여러 이름이 존재하는 것처럼 관계를 계속해서 보려고 노력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왔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이 아닌 것들과 관계 맺을까?


이 차이가 생기는 것은 소가 인간사회 속에서 비인간적 부분에 위치하는 데 비해 경주마 쪽은, 객관적으로는 같은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전적으로 그들에 의존해 존재하는 제한된 사회(경마관계자의 사회)에 대하여 주로 하나의 반사회적 상을 제시함에서 비롯한다. 모든 호칭 체계 중에서 경주마의 명명법이 가장 명료하게 비인간적이며 또 말의 이름을 만들기 위해 행하진 언어파괴의 방법도 가장 난폭하다.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한길사 出/p.304)


위의 인용문은 『야생의 사고』 속에서 원주민들이 자신의 주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체계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허투루 붙이지 않는다. 자신과 상대의 관계성을 가늠하며 이름을 지어나간다. 간략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개 같은 경우는 너무 인간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이름을 붙이면 위치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져 가장 인간답지 않은 단순한 이름을 붙여주지만 새는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 이름을 붙여도 위치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어 인간의 이름을 붙인다. 위 인용문의 말 같은 경우는 말은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도구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가장 비인간적인 명명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주민들은 이름 붙이기, 즉 명명을 통해 타자와 위치를 설정한다. 나는 이 명명이 바로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이라 말하고 싶다. 명명은 자신의 고유성과 타자의 고유성 속에서 어떤 위치를 잡을까 고민하는 것이고 위치를 잡는다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적당한 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위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A라는 지점과 100m 떨어진 위치에 있을 수 있지만, B와는 10m도 안 되는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위치라는 것은 타자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고 원주민들은 이 위치를 명명한다는 것을 통해 직접 만들어 나가려 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뭔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처럼 『야생의 사고』가 말하는 원주민들의 토테미즘은 모든 것을 기호화 시키고 위치를 설정한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을 명명하는 것도 위치에서 영향받는 것처럼 인간도 위치에 따라 관계명을 가진다. 이는 관계가 위치를 설정하고 그것에 이름 붙이는 것, 즉 명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위치를 찾아가는 삶


나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에게는 관계가 존재하고 있었고 해야 할 일을 모르는 나는 관계가 없어서 우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계 맺으려 하는 적극성이 없었기에 일어나는 허무감에 빠져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많은 삶을 수동적으로 관계 맺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으면서 관계가 없어 외롭고 해야 할 일이 없음에 우울해졌다. 이 모습을 탈피하는 것에 나는 분명 원주민들이 명명으로 행하는 적극적 관계 맺음이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적극적인 관계 맺음을 내 삶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나는 일단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을 찾아 나서보고 싶다. 내 위치를 가늠하고 타자를 보면 분명 나의 현실이 보일 것이고 해야만 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분명 내 앞에 있을 것이다(나는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에세이를 쓴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며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청용에 있고 다른 맴버들과 같이 공부한다. 이 위치에서 글을 쓰는 것은 그저 단순하게 내 지식적 습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의 장을 열고 나 스스로 내 삶과 관계 맺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삶에 접근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몰라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2021. 08. 01. / 청공자 용맹정진 2학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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