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청밴드] 3학기 3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조은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8-31 00:49 조회62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안녕하세요 청밴 3학기 2주차 화요세미나 후기를 맡은 단비입니다.


이번주는 <마하바라타> 첫 번째 주차이고요, 쑥이와 준혜가 발제를 했습니다.


먼저 쑥이는 신념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마하바라타>에는 드리타라슈트라라는 줏대없는 왕이 나오는데요, 그는 사랑하는 아들과 역시 사랑하는 조카들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 하며 모든 분란의 원흉(?)이 됩니다. 쑥이 또한 이러한 드리타라슈트라의 모습이 자기자신처럼 느껴져서 발제를 쓰게 되었는데요,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신념’이라는 주제의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신념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 든 본성에 가까운 것을 거슬러서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쑥이는 신념과 고집은 무엇이 다르며, 신념을 앞세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으나 질문들에 대한 답이 풀리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신념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신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것을 깊게 고찰하지 않으면 ‘고집’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또한 신념은 뭔가 하나 선택하면 끝까지 하나 밀고 나가는것일까? 했을 때 선택의 개수가 많고 적은 문제는 아닐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아들들이 관련된 경우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 그는 신념을 갖고 있지 않았고..(마하바라타,80쪽)’ 라는 인용문 내용에서 신념이 있다는 것은 판단의 주체가 나에게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하바라타>에는 여러 미덕들이 나오는데(정직,관대 등등) 어떠한 신념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좋은걸까? 혹시 그 신념이 파괴와 폭력을 일으키면 어찌하는가? 하는 쑥이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민주는 자연의 이치와 원리에 대한 앎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드루요다나(마하바라타에서 분노의 화신같은 인물) 또한 신념이 있는 것이지만, 그는 덜 아는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드루요다나는 판다바 형제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인물로 나오는데요, 드루요다나가 파괴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사람들을 파괴하는 것만이 아닐것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민주의 이야기를 받아 생각해보자면 드루요다나가 파괴하는 것은 물리적인 파괴보다는 원칙이나 이치를 파괴하는 것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드루요다나처럼 자기 이익과 손해밖에 관심이 없을 때 신념 또한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준혜는 유디스티라의 ‘관대함’이라는 신념이 운명을 잘 받을 수 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글의 앞부분에서과 뒷부분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지면서, 관대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준혜는 1페이지를 쓰더라도 싸워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평소 글을 매끄럽게 완성시킬 수 있는 준혜는 한줄이라도 생각을 나아가는 방식으로 글쓰기의 방향을 다르게 해보라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준혜의 발제를 통해 관대함이라는 것을 가지고도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용문에서처럼 관대함은 왜 유일하며, 어떤 한계도 있을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나왔는데요,


유진이는 <마하바라타>에서 말하는 관대함은 지금 우리들이 관대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른 것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통 관대함이라 하면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막 퍼주는 느낌), 원리원칙을 잘 지키는 유디스티라야 말로 관대함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평소 유디스티라보다는 드리타라슈트라 쪽을 관대함과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디스티라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에서 친구들이 재미있어했습니다. 유디스티라의 치명적 약점은 주사위 놀이로 표현되는 탐욕입니다. 완벽해보이는 유디스티라도 이러한 약점이 있다는 것에서 친구들은 인간성을 느꼈습니다. 또한 유디스티라의 신기한 점은 주사위 놀이로 파멸을 했는데도 나중에 또다시 주사위놀이를 하는 임시직(?)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지혜라는 것은 결점 하나 없는 데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탐욕과 그로 인한 파멸 끝에 얻을 수 있는 결과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나오는 등장인물과 함께 끊임없는 해석을 해볼 수 있는 <마하바라타> 세미나였습니다. 다음주에는 곰샘이 세미나에 오신다고 하는데요, 곰샘과 <마하바라타> 조합이라니.. 그래서 저희들은 각자 질문들을 준비해오기로 했습니다(이런 기회를 지나칠 수 없지요). 그럼 다음 후기에서 만나요!



안녕하세요, 논어 후기를 맡은 은샘샘입니다.


이번 주는 용제&민주언니의 강독이 있었습니다.

<15. 위령공편으로 경구가 많았지요.

친구들은 15-11부터 15-41강독을 맡았는데,

그중에서 초반부를 맡은 용제의 강독부터 먼저 보시죠!


15-20

子曰,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자왈, 군자질몰세이명불칭언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세상에 일컬어지지 못할까 근심한다.”


용제는 공자님께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근심하라’고 하셨는데, 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얘기한 건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평소에 얘기하시는 것과 달라서 궁금해 졌다고 말이지요. 군자가 죽은 뒤에 세상에 일컬어지지 못할까 근심한다는 건 어떤 마음인가 고민했다고 합니다.

용제는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건 살아있을 때의 마음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혜택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죽은 이후에 바라는 건 좀 다른 것일거라고 용제는 말했습니다. 자기가 성인되기를 했다면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일 거라고 했지요. 도가 행해지지 않았는지를 생각하며 알려지는 것을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살아있을 때 성인은 도착지를 두지 않는다고, 항상 도를 향한 과정 중에 있다고 합니다. 용제는 이 도를 향한 과정에 있는 것이 자신을 성인이 아닌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생각하고 배우면서 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했죠.


그래서 용제가 다음으로 가져온 대목은,


15-16

子曰, “不曰 如之何如之何, 五末如之何也已矣

자왈, “불왈, ‘여지하여지하, 오말여지하야이의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15-17

子曰, “?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義哉!”

자왈, “군거종일, 언불급의, 송해소혜, 난의재!”

공자가 말하였다. “여럿이 모여 하루 종일 놀면서, 의리는 언급하지 않고 사사로운 꽤부리기를 좋아하면, 정말 곤란하다.”

15-18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자왈,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의리를 바탕으로 삼고, 예에 따라 행하고, 겸손하게 표출하고, 성실(신의)로 완성하면, 군자답다.”


차례로 말해보자면, 15-16에서는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성인이 되기가 힘들다는 걸 말하고 있고, 15-17에서는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성인되기를 모르기 때문에 계속 꽤를 부린다는 걸 문제 삼고, 15-18에서는 의리처럼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걸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이어나갔다고 했죠.


전에는 “성인은 뭐다”라고 하면, 그것만 하면 된다고 사마우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자신을 계속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고요. 하지만 16-20 대목을 해석하고 나서는 생각을 하면서 성인이 되기를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배운다는 거 자체보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해지는 거 같다고도 했지요.


제가 용제의 말을 피뢰침처럼 써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저는 용제가 성인은 도를 행하기 위해 늘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린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죽어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은 아니겠지요. 도가 행해지기를, 용제의 말로 표현하자면 성인이 되기를 평소에 고민하고 실천하고 힘써야 한다는 말에 더욱 가까울 듯합니다.


용제의 강독으로 함께 나눈 대화들은 이러했는데요.

그럼 성인이라는 건 누가 정의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것 다음을 고민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피드백이 있었지요. 단어에 걸려서 다음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15-20에서 15-16으로 점프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용제의 설명을 들어도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건 패스하겠습니다.

또 용제의 전제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생각과 실천을 해야 한다. 내게 없는 걸 배워야 한다.”는 용제의 전제가 뭔지 대해서 말이지요. 생각과 실천을 나누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지요. 용제의 전제를 알지는 못하고 웃긴 농담을 주고받았지만요. 용제는 배워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파, 준혜는 성인이 이미 마음에 있다는 파, 등등 양명이 언급되는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민주언니의 강독이었습니다.

민주언니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두 개를 꼽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15-29와 15-30이었죠.


15-29

自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자왈, “인능홍도, 비도홍인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언니는 내가 배우려고 하기만 하면, 배움의 장 안에만 있으면 알아서 도와 진리가 넓어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라는 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도를 넓히는 것이라는 걸 발견하게 된 대목이라고 했죠. 그리고 남산강학원으로 예시를 들어주었는데요. 강학원에서 공부하다보면 연차별로 시간이 쌓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부의 폭이 시간에 따라 커지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요. 근데 사실은 1년차든, 2년차든 자신이 가져가는 밀도는 다르지요. 민주언니는 여기서 자신이 힘쓰고 애쓰는 만큼 공부가 넓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판사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 정의로움을 실천하면 판사가 아니어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비유가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민주언니는 도가 객관적인 진리, 도달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진리에 도달했다고 해서 자신의 그릇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지요. “도란 내가 힘쓴 만큼 얻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를 저도 함께 배웠습니다.

또 여기서 ‘홍’이라는 글짜가 팔의 팔뚝, 팽팽한 부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민주언니는 ‘홍’이라는 건 근력이랑 비슷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요. 누구나 활을 잡는다고 해서 뛰어난 궁수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요. 자신이 부단히 노력을 해야 넓어지니까요.


15-30

自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자왈, “과이불개, 시위과의

공자가 말하였다. “허물이 있으면서 고치지 않음이 허물이다.”


민주언니는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이 대목에서 떠오르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잘못은 최대한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는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이후에 창피하거나, 변명하고 싶고,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고 하였죠. 그래서 민주언니는 잘못이라는 거 자체에서 자의식을 올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그리고 15-30 대목에서는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 걸 잘못이라고 한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을 안 고치고 싶어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는데요. 잘못을 해놓고 의지로서 안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잘못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던 거 같다고 말이지요. 민주언니는 잘못이 자신을 보여주지만,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잘못을 계속할 때 오히려 거기에 우리의 사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요. 민주언니는 잘못을 하면 어디에 내 사심이 붙어있는지 보는 좋은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잘못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했지요.

저도 민주언니를 통해 우리가 잘못이나 허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본 거 같아서 공감도 되고, 재밌었습니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고치지 않는 모습을 ‘나의 사심을 알아볼 기회’로 보는 것도 재밌었지요.


민주언니의 강독으로 함께 얘기한 것은,

민주언니는 잘못을 ‘알면서’라고 했는데, 본문에는 ‘있으면서’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있다고 하는 의미로 쓴 건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민주언니는 알아야 잘못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다고 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고 했지요.

그러자 ‘있다’고 하는 건 보이는 것으로 허물이 없는, 행위의 차원에서 전해지고 있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어 얘기했지요. 결국은 안다와 있음. 인지하는 것과 행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가 흘러갔지요. 인식과 행위의 우위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자, 여기까지 재밌는 강독과 토론 후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주 청밴에서 봐요!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