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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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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글리] 3학기 6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달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9-24 11:50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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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자 3학년, 3학기 6주차 후기입니다! (개인적으로)평온하고 고요했던 추석 방학이 지나고 첫 시간.. 

마치 새 학기가 시작한 기분입니다.


외국어 수련


저희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의 아홉 번째 에세이 “Darwin and Paley Meet the Invisible Hand” 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제목에서처럼 Invisible Hand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겠죠? 먼저 ‘a good reverend’ 윌리엄 페일리의 『Natural Theology(자연 신학)』에서 시작합니다. 페일리는 이 세계가 신의 ‘well-designed world’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논증하기 위해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는 바로 생물들이(책에서 든 예시로는 새들이) 어째서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열심히 하느냐는 것이었죠.


When a male and female sparrow come together, they do not meet to confer upon the expediency of perpetuating their species.


예를 들면 참새들은 자기 감각에 따라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을 뿐인데,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참새들이 참새 세상과 종의 영속을 걱정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죠. 페일리는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참새를 짝짓기하게 하고, ‘skin and bone’이 될 때까지 둥지에서 가만히 알을 품게 하는 ‘invisible hand’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이다! 이렇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개체 차원에서는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개체는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전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God’s prospection을 동물의 외부에 설정하는 겁니다.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페일리는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에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려보겠습니다.







절차탁마



지난주 후기는 이번 절차탁마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글을 써오지 않아 다시 한 번 글쓰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라고 시작했는데요, 이번 주도 똑같이 시작해도 문제 없을 듯합니다. 매번 다른 구멍을 메우시느라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번에 말씀해주신 것은 개념을 사용할 때에는 그 개념이 나온 맥락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그 개념을 만들어낸 철학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이 말을 써도, 저 말을 써도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 그래서 이 개념은 어디로부터 태어난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개념의 성질과 속성을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일상과 내 생각은 하나의 실험실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개념을 실험실에 들여오면 어떤 출력값이 나오는지 그것을 가만. 보는 것이죠.


이번주 세미나에서 재밌었던 것은 개별자와 보편자라는 개념이었는데요.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산해낸 것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더 정교화시키고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 자기 철학을 밀어가다 보니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 이전에(선험적인) 그것을 만드는 이데아들(형상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질서나 체계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질서와 함께 위계를 부여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별자, 보편자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이데아는 곧 종적 에이도스였고, 그 기준으로 이데아의 질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보편자로서의 ‘나무’에는 참나무, 자작나무, 화살나무, 감나무 등의 개별자가 종속되어 있는 것이죠.  보편자 나무는 보편자 풀과 함께 보편자 식물에 속합니다. 보편자 식물은 보편자 생물에 속하고요. 이런 식으로 이데아들에 질서가 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 하면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가 더 강고하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입니다) 플라톤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데아가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것이 위치가 보편자 속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으면 아직 ‘덜 된’ 현실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을 읽으며 저는 플라톤을 좀 좋아하게 되고 있습니다. 하하. 다음주 보라샘과 호정샘, 다른 구멍을 들고 오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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