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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탐구>
이번 주 비전탐구 시간에는 보르헤스의 두 번째 작품 ‘알레프’를 다루었습니다. 워낙 난해하고 독특한 문체를 쓰기로 유명한 작가였기 때문에 감히(?) 발제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요,,^^ 이런 사태를 미리 직감하고 문쌤께서 하나의 작품을 요약해보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덕분에 무사히 글을 마칠 수(글 이라기보다는 요약문..^^) 있었습니다. 저는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라는 단편을 골랐는데요, 그의 인생을 묘사한 부분이 매우 오묘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경찰에 맞서 싸우던 병사였는데 경찰과 대치하던 순간 해오라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원주민과 싸우기도 하는 등, 많은 전쟁을 치르는데요. 나중에 가서는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경찰이 됩니다. 그는 경찰의 신분으로 그가 쫒던 탈영병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 순간 과거와 똑같은 새, 해오라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는 타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목격한 것이죠. 참 오묘하지 않나요? 한 인간의 삶으로 다수의 삶을 표현함과 동시에 다수의 삶을 한 인간의 삶으로 그려내는 그의 마술적인 기법! 마치 순간의 영원을 사는 한 명의 사람이 모든 사람의 생을 겪는 것 같은 체험을 합니다. 불교적인 색체가 뿜뿜 하네요. 다시금 불교의 윤회가 생각났습니다(이쯤 되면 제가 윤회를 사랑하는 수준이 아닐지.. 이러다가 죽어서 윤회안하면 정말!!! 안 서운할 것 같아요.^^ 넘나 다행일 듯..ㅠ)그런데 보르헤스가 실제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지성연마>
이번 지성연마시간에는 심청전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발제는 은정언니 순서였는데요, 언니는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된 장면에 주목했습니다. 심봉사는 청이가 마련한 맹인잔치에서 청이와 재회하고서 “내 딸 살아오니 눈 못 떠도 한이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언니는 여기서, 심봉사가 타인의 마음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눈이 뜨인 것이라 해석했어요.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았을 때, ‘심봉사의 마음보다 심봉사를 생각하는 청이의 마음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 결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심봉사가 맹인잔치에 등장한 이유자체가 그저 잔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끝에 등장한 달막한 대사로 결말의 원인을 심봉사가 경험한 감정의 극한으로 말하기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눈뜨는 장면보다 심청이가 맹인잔치를 벌여서 심봉사를 찾아낸 지혜에 더욱 시선이 갔는데요, ‘신데렐라의 구두 찾기처럼’ 청이가 황후의 눈먼 아비를 찾는다는 공문을 전국에 내보내면, 심봉사를 사칭한 자들이 들끓어 오히려 나라가 혼란했을 위기에 처했을 겁니다. 그러니 반대로 그 목적을 숨기고 방방곳곳의 맹인들이 제 발로 궁에 찾아오게 만들어서 심봉사를 찾으러 다니는데 힘쓰는 일도 없애버렸으니, 이러한 지혜는 아무나 갖추지 못하는 보물이겠지요. 이러한 지혜는 남을 꾀어 부리거나 이용하여 뜻을 이루는 처세술과는 또 느낌이 달랐습니다. 앞서 읽었던 토끼전이 처세술을 담은 이야기였다면, 지혜를 담은 심청전은 아무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베풂을 통해 뜻한 바를 이룬다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둘 다 뜻한 바를 이뤘다는 점에서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토끼의 결말은 좋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는 처세가 아닌 지혜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