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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부 자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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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밴드]3학기 10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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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1-08 20:31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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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밴드 3학기 10주차, 에세이 후기를 맡은 용제입니다. 이번 에세이는 청공자 2학년 3학기에 함께 읽은 책 중 한권씩을 골라 각자가 배운 부분을 글로 써보았습니다. 다양한 책으로, 다양한 글이 나왔답니다..ㅎㅎ 각자 더 나아갈 지점도 있었구요!


첫 번째 발표는 쑥쑥샘!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를 통해 자신의 책읽는 습관을 돌아보며, 기존의 읽기가 추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구체적인 책읽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쑥쑥샘의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클릭!

지식이란 단지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상황과 이어져 있다는 바렐라의 이야기를 가져 왔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읽은 것을 내 삶으로 끌고 와야만 합니다. 읽고 쓰며 살펴본 『윤리적 노하우』를 생각해보면, 쭉 이어나가면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바렐라는 우리의 삶이 ‘체화된 것’, 즉 몸에 새겨진 일상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게 되고, 결정하는 것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미 세계를 구성하는 지식은 이 몸에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이미 내 안에 다 있다고도 할 수 있고요. 그렇다면, ‘읽기’란 어떻게 이 ‘가득함’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의지로 바뀐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쑥쑥샘의 문제의식으로 풀어가자면, ‘어떻게 구체적 책읽기를 해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함께 봐주신 근영샘께서는 ‘고민이 안된 글이다’라고 피드백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글쓰기라고도 해주셨고요. 이와 같은 수동적 태도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나오는데, 이는 곧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태도가 원래 하던 방식인데, 이것으로는 바뀔 수 없으니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수동적 태도로 살아갈 때, 점점 외부 자극에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외부에 관심이 없으니, 작은 것이라도 힘겹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제 에세이였습니다.

...꼭 보고 싶으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클릭!

저도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를 읽고,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는’ 판단이 우리 삶에서 힘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서 쑥쑥샘의 에세이 이야기를 하면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어떤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펼쳐지는 삶과는 다른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봄’이라는 것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내리기보다,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죠!

저는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의 관계를 가지고 글을 써보았습니다. 자꾸만 상대에게 몰두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자꾸만 ‘이렇게 해야해!’라는 판단만 내세우다 결국 불편을 주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근영샘은 ‘말이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고 피드백해주셨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말의 용법이 있는데, 어떤 사고를 거치고, 특정 단어(여기서는 ‘판단’같은 단어입니다)가 어떤 의미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로 쓰여질 때 설명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글을 쓸 때는 사용하는 개념어와 중심어를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 명확하게 정리하고 나누는 부분이 필요하겠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특정 대상에게 몰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습관적으로 특정 대상에게 몰두함이 불러오는 것이 그 외의 세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고요! 그 대상이 연인이라면, 결국은 연인을 욕먹게 하는 행동이라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관계는 그렇게 ‘갇히는 방식’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상대를 욕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요.

에세이 발표가 끝난 후로도 여러 가지 상황과 마음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무척 어렵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습관적으로 자꾸만 몰두하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제가 어 몰두를 끊어내는 방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껏 그래왔으니까요. 뭔가를 만드는 일, 어떤 동물을 기르는 일, 연인을 만나는 일...등! 지금 하고 있는 집착(쓰고보니 몰두보다는 집착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대상에게 집착하는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연인과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습관을 박차고 달라지는 일은 느리게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 자체는 꽤 시급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넓은 세계를 만나며 상대를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에세이 발표는 은샘샘입니다.

은샘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은샘샘은 R. K. 나라얀의 『마하바라타』로 에세이를 썼는데요. ‘말’을 통해 운명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주제로, 어떻게 말해야할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나가며 스스로가 그동안 힘없는 말을 뱉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말이란 관계에서 작용하는 것인데, 그 말을 대충 내뱉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주장만 하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근영샘의 피드백은 ‘주제는 재미있지만, 점점 길을 잃어가는 글’입니다. 작품 분석이 조금 더 되어야 하고, 글의 중요한 주제인 말과 운명의 관계 등이 더 풀려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장면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과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은 참 신기합니다. 평소에 ‘말’에 그런 힘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해 더욱 그렇습니다. 펼쳐지는 운명은 운명이고, 말은 그저 소리를 낼 뿐이니까요. 하지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말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상황에 걸맞게 나타나게 됩니다. 저 멀리 도착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라고 외치고, 배고플 때 먹는 밥 한끼에 ‘맛있다’며 감탄합니다. 이처럼 말은 상황과 떨어질 수 없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다르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고요. 벌써 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운명을 대하는 법으로써 ‘말’이 힘을 갖는다는 것이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은샘샘의 마지막 에세이도 같은 주제로 더 풀어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후후..기대되지 않나요?


네 번째 순서는 준혜샘인데요.

준혜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이번 에세이의 최고의 순간을 꼽자면 준혜샘의 한 문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곤조곤하고, 여리여리하고, 순진한!’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뭐냐면, 준혜샘이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를 읽고 다시 살펴본 ‘선’에 대한 표상입니다. 니체에게 ‘선’이란 살아가려는 의지, 생명력, 강인함 같은 것들과 연관이 있으니, 준혜샘의 이미지와는 비교해보는 맛이 있습니다. 니체는 ‘연민’을 무척 비판합니다. 타자를 약자로 보는 것인 동시에 스스로도 약자로(연민은 필연적으로 자기연민으로 이어진다)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약자로 보고, 그렇게 만들어가게 되는 패턴은 결국 생명력을 저하하게 되고, 이는 선함보다는 악함에 가깝습니다.

근영샘도 이 지점에서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무척 생기있는 글이 되었으나, 이러한 ‘연민’에 대한 태도에서 글에서는 한발 빼둔채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리여리, 조곤조곤, 순진한 ‘선’의 모습에 자신을 맞춰가려한다는 것이 연민받으려 한다는 것과 같고,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조금 더 드러내야 합니다.

재미있는 주제였습니다. 사람마다 이미지(여리여리, 조곤조곤, 순진)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는 특정한 ‘선’의 이미지로 자신을 맞춰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연민을 불러 일으키려는 태도이고, 결국은 생명력을 깎아먹으려 스스로 약자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평소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면, 태도를 빠르게 바꿔내려 하게 되지 않을까요?


다섯 번째 순서는 하늘샘입니다.

하늘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앞선 준혜샘의 글이 모두의 웃음을 훔친 글이라면, 하늘샘의 글은 스스로 눈물을 훔친 글이라고나 할까요..? 하늘샘은 『안티크리스트』를 통해 ‘감동을 찾아다니는 태도’에 대해 돌아보았습니다. 평소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들을 찾고, 감동에서 느껴지는 고양감을 믿게 되는 것!

하늘샘의 눈물은 이 지점에서 터져 나왔습니다(물론 글은 ‘감동에 대한 확신’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라는 것까지 나아가고, 있는 그대로 보고 나아가야 함!까지 나오긴 했습니다). 근영샘은 글이 자기연민에 빠졌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글은 그러면 안된다는 피드백도 함께요. 어떤 문제를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의 문제, 질문으로 끌고와 풀어주어야 합니다. 뭔가 많이 지나가기는 했는데, 발표 자리의 임펙트가 커서 쓸 말이 별로 없네요. 하늘샘,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조금 보태주시면 어떨지..?


여섯 번째 순서는 민주샘이었습니다.

민주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민주샘도 『안티크리스트』를 통해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았습니다.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며 (자신만 못한 타자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결국 자신마저도 약자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자신을 약자로 만드는 악순환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자신에게서 선과 악을 규정하고 살게 되면, 더 이상 삶에서 힘쓸 것 없어집니다. 그저 정해진 선과 악을 따라가야 할 뿐입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보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근영샘은 세 가지 중요한 키워드(이분법, 우월감, 약자)를 짧게 터치하고 끝났다는 피드백을 주셨는데요. 이것들을 차분히 풀어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일곱 번째는 단비샘이었습니다.

단비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단비샘도 『안티크리스트』를 통해 에세이를 썼고, ‘고통을 회피에하는 태도’를 풀어가는 것으로 글을 출발했습니다. 항상 고통을 멀리하려 애썼는데, 니체는 그러한 고통을 오히려 행복과 연결하고, 그것을 ‘힘의 증대’와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곧 ‘천국’과 같은 고통 없는 세계, 즉 허구적 세계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즉,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태도가 고통을 거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문득 ‘고통은 누구나 싫어하지 않아?’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것이므로, 고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는 달라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하고자하는 바를 위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더 격렬히 원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단비샘의 질문에서 나아가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이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고통을 밀어내고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근영샘은 ‘니체가 정의한 행복(고통조차 받아들이는)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라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안티크리스트』로 글을 쓰려면 니체의 말로 생각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만 풀려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렵습니다만, 이렇게 자신의 경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니체가 거부하는 ‘평화와 온유’라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여덟 번째는 유진샘이었습니다.

유진샘의 에세이를 보고 싶으시다면 클릭!

유진샘도 『안티크리스트』로 에세이를 썼습니다. 주제가 재미있는데, ‘재미있지만 하기 싫을 때가 생기는 공부’입니다. 분명 재미있음에도 의무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지만(좋지만 싫어!니까요..?) 자꾸만 책과 몸이 멀어진다는 것으로 설명했을 때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유진샘은 자꾸만 사람은 이래야만 한다’는 상(허구)에 맞춰가려고 한다는 것을 보며, 이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가치판단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니체의 말을 들어보면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허구가 아닌 실제하는 세계를 보고, 거기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유진샘의 에세이 내용이었습니다.

근영샘이 주신 피드백은 이렇습니다. 일단 ‘의무감’이라는 진단(공부가 힘들다는 것에 대한 진단)이 뭔지 잘 모르겠고, 문제를 현실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유진샘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는 것중에는 ‘어떤 일이든 후반부에 힘이 빠지는 것’도 있었는데요. 여기서는 힘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몸에 나타나는 패턴을 보고, 그것들이 보일 때 즉각적으로 바꿔볼 필요도 있다는 것도요.



이렇게, 청밴 3학기 에세이가 끝이 났습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생긴 것이 즐겁기도 합니다. 모두 고생하셨고, 4학기 에세이에서도 즐겁게 써봅시다! 그리고, 멋지게 한발 도약하며 장원한 준혜샘과 하늘샘, 은샘샘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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