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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청글리 4학기 1주차 후기를 들고온 미솔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 가지 철학 개념들을 배웠어요~
그 중 저는 ‘분절’이라는 개념이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분절’이라는 말을 지금껏 잘못 알아왔더라구요..
‘분지르다’랑 어감이 비슷해서 그런지 무언가를 딱 잘라버리는 이미지를 떠올렸거든요.
그래서 ‘분절’을 ‘절단’이라고 보고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분절은 하나의 사물이 둘로 나뉘는 게 아니더군요..
분절은 마디가 지어지는 거였어요.
제가 기존에 분절을 절단이라고 보았을 때, 분절 vs 전체를 이렇게 대립하는 구도 위에서 봤었는데요,
분절이 더는 절단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것을 전체와 대립하는 구도 위에서 볼 필요가 없더라구요.
분절은 전체와 대립하지 않고, 항상 전체성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뭔가가 구체화 되어가는 모습을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찰흙 덩어리를 주물주물해서 하나의 사람 모형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한 덩어리가 점점 구체화 되어가면서 몸이 생기잖아요. 그러려면 분절이 되어야 하는 거죠!
팔, 다리가 마디 지어지고, 몸통과 머리가 마디 지어집니다.
분절이 되면서 비로소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뢰즈에게는 ‘추상의 구체화’가 다름 아닌 분절이라고 합니다.
*분절은 ‘분리’이기도 하지만 ‘연결’이기도 합니다.
팔과 다리처럼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이렇게 항상 전체성 위에서 이루어지기에 이제 분절은 그 방식이 문제가 됩니다. 어떻게 분절되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져요.
예를 들어 뱀과 인간의 몸은 분절점이 다르잖아요. 그렇기에 다른 성질을 가지고 다르게 삽니다.
같은 척추라도 뱀의 경우 그것이 너무도 세밀하게 분절이 되었어요. 뱀은 많게는 430개의 척추를 가졌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분절이 된 것이죠…
이렇게 분절의 방식이 다르니 뱀과 인간은 움직임도 다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예요. 삶의 리듬은 그 분절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인간은 일년을 12달로 분절하고, 하루를 24시간, 또는 낮과 밤으로 분절하죠.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살아갑니다.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자는 식으로요.
저는 이번에 분절을 배우면서 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분절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리듬을 가지려면 그 분절점을 달리 해야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는 아직 좀더 생각해봐야겠지만요ㅎㅎㅎ
오늘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만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