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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에티카, 새로운 신을 만나다 |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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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05 23:55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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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아(감이당)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중에서 카톨릭이다. 오랜 기간 신을 믿었지만, 신이 무엇인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믿고 의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결혼과 함께 세례를 받았고 그 후로 성당에 다니고 있다. 교우들과의 사교모임이 재미있기도 하고 봉사는 남과 나누는 것이니 좋은 거라고 생각해 꾸준히 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교회를 다녔다. 성당을 다니면서도 여행 가면,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기와도 올리곤 한다. 교회와 절, 성당이 주는 경건한 분위기가 좋다. 찬송가는 감정을 고양 시키고, 목탁은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세상살이에 급한 마음을 잠시나마 차분하게 해주기에 좋아한다. 몇 년 전부터는 108배로 절 수행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를 섭렵하는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복을 주신다면 누구든 믿는다

부모님은 딱히 어떤 종교를 믿지는 않으셨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는 아침마다 평소에는 찬송가를,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캐롤을,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는 불경을 크게 틀어놓고 우리 형제들을 깨우셨다. 처음엔 목탁 소리가 나길래 스님이 집에 오신 줄 알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목탁 소리가 무섭기도 했지만 듣다 보니 불경도 찬송가도 다 좋았다.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동네 목사님, 스님, 무당 가리지 않고 두루 다 친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묘를 이장할 때는 무당과 의논을 하셨고, 굿을 하기도 했다. 무슨 날마다 여기저기 보시나 헌금을 하셨다. 아버지는 수년 전 선산 입구에 큰 비석을 세우셨다. 그 비석에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옥황상제님, 문수보살님, 지리산 신령님, 노고할미님… 많은 신들을 새겨 놓고 그 신들에게 자식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문을 새기셨다. 선산 이름도 학이 알을 낳는 곳이라는 뜻의 단봉(丹鳳)산이라고 지으셨다. 자손들 중 큰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시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손자, 손녀가 태어날 때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셨다. 지금은 손주들이 크는 것을 보며 기대를 접었다 폈다 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비석에 쓰신 기도문을 보면서 참 많은 신들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간절함이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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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의 종교적 공통점은 무언가를 자꾸 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다양한 신들에게 보험을 드신 것처럼 나 또한 내 가족의 건강, 부,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신에게 빌었다. 아버지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비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승진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또 마음에 안 드는 동료가 있으면 그 동료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는 항공사에서 승무원 생활을 했기에 손님들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았다. 유니폼을 입은 나는 평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 손님에게 화가 나도 겉으로는 늘 웃어야 했다. 그런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기에 신께 매달려 진상 손님들을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비행을 하면 또 화가 났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다. 나는 다시 기도에 매달렸다. 기도가 잠깐의 위로는 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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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시간이 많아지니 성당을 더 자주 나가게 되고 봉사도 더 많이 했다. 기도 내용도 바뀌었다. 집값이 오르게 해달라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매번 기도하고 의지하지만, 신에 대해서는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성서 말씀이 진짜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건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믿고 비는 게 편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오직 신을 열심히 믿어서 위로와 복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초월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초월신은 이 세계와 분리되어 세계 밖에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신이다. 나와 상관없이 저 바깥에 있으면서 나를 행복하게도 만들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존재. 저 멀리 하늘 높은 데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다. 신을 믿든, 안 믿든 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초월신이다. 이 세계 밖에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지배하는 신. 신과 피조물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기에 신과 피조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이런 존재를 상정하면 신은 죽지도, 변하지도, 아프지도 않고 완전무결한데 나는 늘 변화하고 아프고 죽는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신의 나라는 완전한 천국, 이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다. 그래서 신을 믿어 죽어서는 천국에 가길 원하고, 사는 동안은 신에게 빌어 복을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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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저 믿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신이 가치의 척도가 되면 신이라는 척도와 이 세계 사이에 위계가 생긴다. 신은 완전한 지배자이며 주인, 만물은 신의 창조물이며 노예. 인간은 불가능한 것을 척도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한다. 이 세계는 항상 변화하는데 척도는 불변하니 척도와 이 세계 사이에 엇박자가 생긴다. 출발부터가 모순이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기꺼이 믿는다. 왜? 현실이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고 고통스럽지 않은 불멸의 세계가 있다고 하니 죽어서라도 그런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신을 믿으면 믿을수록 자신의 삶에 결핍을 느낀다. 비교 기준이 신이기에 자신은 늘 부족한 존재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신. 그 신에 매달리는 나. 이런 태도는 일상을 부정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한다. 지금의 나 보다 더 나은 게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신의 힘을 빌려 노력한 것보다 더 얻기를 원하고, 기적을 바라게 만든다.

신적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인간적 감정을 쉽게 신에게 부여한다.(1정리 8. 주석2)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신들의 본성과 신적 본성을 혼동해서 자신들의 인간적 감정을 신에게 부여한다고 한다. 인격신이란 신에게 인간적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다. 인격신? 내가 내 감정을 신에게 부여하고 있었다니. 신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그럼 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은 것들은 뭐였지? 나는 신이 인간처럼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고, 감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슬퍼하고 기뻐하며, 인간 때문에 괴로워하고 즐거워함을 믿었다. 그래서 신이 보기에 예쁘게 살고 싶었고, 신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쁜 행동을 해서 신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이 나를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총애하기를 원했고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부모에게 칭찬 듣기 위해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런 신에게 잘 보이려고 봉사도 했다. 그래야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하면 들어줄 테니까. 신이 감정을 가진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신에게 이입하고 있었다.

들은 신이 모든 것을 파괴하여 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또한 그들은 자주 신의 능력을 왕들의 능력과 비교한다.(2정리3. 주석)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높은 존재인 왕, 그 왕에 대한 이미지를 신에게 투사한다. 능력 있는 왕이란 자기 마음에 따라 누군가를 총애하고, 누군가에게 벌을 준다. 갖고 싶으면 남의 것을 빼앗을 수도 있고, 잘되게 도와줄 수도 있다. 이런 자유로운 왕의 모습으로 신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의 전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왕은 폭군 아닌가? 이런 왕의 이미지가 스피노자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의 이미지다. 지금이라고 딱히 다른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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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은 모든 걸 알고 있고 신이 나와 일대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이 내 삶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여겼다. 신을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정말 신이 나 개인에게 관심이 있을까? 모두가 기도하는 내용이 비슷할 텐데 신은 그것을 다 들어주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격신은 익숙했고 의지할 수 있으니 편안했다. 나는 그동안 신과 일대일의 거래를 했다.

이 세계 밖에 존재하고, 인격을 가진 초인간적인 존재. 이 두 개를 합치면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불멸의 전지 전능한 인간?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나는 문자 그대로 하늘에 신비스런 존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릴 적 교회에서 들었던 신에 대한 이미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성경을 성직자의 설교에 따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고 무조건 믿었다. 그동안 나이를 먹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지만, 신에 대한 생각은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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