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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양탄자 타고 천일야화로 | 재물과 약속에 관한 페르시아의 에피스테메(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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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8-02 13:43 조회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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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감이당)

감옥 생활을 코믹하게 그려놓은 ‘슬기로운 깜빵 생활’이란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한 죄수의 캐릭터가 묘사되기를 감옥에서조차 돈 문제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돈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반 야근수당 1만원을 누가 꿀꺽 했을 때도 사고를 쳤고, 감옥 안의 행사 상금 500만원도 작업반장이 가로챘다며 작업장에서 망치를 들고 설쳤다. 그는 돈 문제에 굉장히 쪼잔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흥분을 잘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나는 의아했다. 누가 자기 돈을 가로채가는데 눈이 안 돌아가는 사람도 있나? 밝혀내야지!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는 법치주의 국가다보니, 불의한 일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고 법으로 해결해야 문화인이자 성숙한 시민이다. 그런데 법은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기엔 너무 관대하거나 부패했다. 그래서다. 억울한 일을 당해 놓고도 혼자 너무 ‘욱’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벌 받고 손해를 보니, 죄수의 팔자를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나, 여기 돈 문제에 있어서 예민한 감각과 철두철미한 약속이행을 문명인의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페르시아의 상인들이다. 약속을 안 지키거나 돈을 떼어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며, 그런 일을 당했다면 법과 재판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보다 더 가혹한 응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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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맡긴 물건은 신성하다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지아 이야기>로 소개된 천일야화의 이야기는 페르시아 사람들이 돈에 관한 약속이행에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알리코지아라는 상인은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어느 날 꿈에서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모든 이슬람 신자는 평생동안 적어도 한 번은 메카를 방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는 생업을 핑계로 미뤄왔던 메카순례를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했다. 메카는 멀고 험난한 사막을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순례자들은 자기 재산을 다 정리하고 가야만 한다. 알리코지아는 재산을 정리한 금화 일천 냥을 항아리에 담고 그 위에 올리브를 덮어 이웃의 친구에게 맡겼다. 그 후, 그는 맨 먼저 메카순례를 마치고 이집트의 카이로도 가고,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쉬라즈 등지를 돌며 7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기 직전, 항아리를 맡아 준 친구네 집 식탁에서 올리브 얘기가 나와서 그 친구는 맡아둔 항아리를 개봉하려고 한다. 그때 그의 부인이 펄쩍 뛰며 말하길,

제발 그런 음흉한 행동일랑 삼가세요남이 맡긴 물건처럼 신성한 것은 없다는 사실당신도 잘 알잖아요? (…)중요한 것은 아직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없다는 사실이에요그러니 내일이나 모레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죠만일 그가 돌아왔을 때 항아리를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주지 못한다면 당신이나 우리 집안에 그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분명히 말하는데난 그의 올리브를 원하지도 않고 절대 먹지도 않겠어요.” (천일야화 5, 1718)

 

이 단호한 태도라니! 우리로 따지면 친구의 김장김치 한 통 맡아 주었다가 감감 무소식이라 7년 만에 ‘우리가 먹자!’라고 한 것뿐이다. 그럴 법도 한 일이건만 그 부인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뒷이야기의 전개는 뻔하다. 남편은 항아리를 열었고 썩은 올리브 밑에서 금화를 발견했다. 금화를 가로채고 다른 올리브로 항아리를 채워두었더니, 때마침 돌아온 알리 코지아가 올리브만으로 채워진 항아리를 확인하고 재판을 청구한다. 현명한 판결로 친구의 죄가 드러나 친구는 처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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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가 돌아왔을 때 항아리를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주지 못한다면 당신이나 우리 집안에 그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물론 이 가혹한 처형은 꿀꺽한 금화 일천 냥과 거짓맹세에 대한 벌이기 때문에 응당한 댓가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부인의 태도다. 남이 맡긴 물건이 신성하다는 인식은 그것이 다 썩은 올리브일지라도 열어보는 것조차 터부시한다. 자신의 것이 아니면 힐끔거리지도 않는 것이다. 그녀가 먼저 올리브가 먹고 싶다고 했기에 남편이 그 항아리에 손을 대려한 것인데, 그녀는 부정직하게 얻은 걸 먹고 싶지 않았다. 7년이나 지나 올리브가 썩었기 때문이 아니라, 남의 것이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다.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이 맡긴 물건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약속 이행이란 이들의 생활 속 깊숙이 신앙처럼 박혀있는 계율이다.

남겨진 물건, 양심이 아니라 윤리

신기한 모험이 가득한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것은 전설의 새나 식인종 거인이 아니라 신의가 투철한 선장들이었다. 선장은 신드바드가 난파당해 죽었다고 여기면서도 그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이후에 선장은 몰골이 영 말이 아니게 된 신드바드를 만났을 때 그를 못 알아보고 이 물건들은 모두 그의 것이오그래서 나는 그를 대신하여 이것들을 팔아 나중에 그의 가족을 만나면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주려 하고 있소”(2, 347) 라고 말했다. 두 번 째 모험에서 잃었던 물건을 세 번째 모험에서 되찾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얼마 동안 우리와 함께 항해했던 어떤 상인의 것이오그런데 이 상인이 죽고 말아서 내가 그를 대신하여 그 상품을 굴려 이문을 남기려고 한다오혹시 그의 상속자를 만나게 되면 장사한 결과를 돌려주려고 말이오”(2, 372) 이들의 정직함을 식인종 얘기보다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되려 페르시아의 상인들이 놀랄 수도 있겠다. 상인을 도둑놈 취급하는 그 나라는 어디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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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코지아>의 이야기에서 부인은 죽었다는 소식도 없는데 어떻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대냐고 했지만, <신드바드>에서는 죽은 것이 확실하게 여겨질 때조차 손대지 않는다. 코지아의 경우는 물건을 맡아 달라는 약속을 했지만, 신드바드의 경우엔 아무런 약속도 없이 사고로 헤어졌음에도 선장들은 남겨진 물건에 자체적인 윤리적 계율을 작동시켰다. 남의 물건에 대한 탐욕을 꾹 참는 것이 아니라, 남의 물건 자체로 자신의 신앙과 직결된 윤리적 실천을 이행한다. 그래서 남이 맡긴 물건은 신성하다는 것일까?

이슬람 경제관의 근본은 모든 부()는 알라에게 속한다”(정수일이슬람 문명, p189)이다. 이슬람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부족 공동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법 등의 공동체 전반의 윤리가 이슬람 경전을 따른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 역시도 알라의 것을 잠시 위탁받은 것으로 여긴다. 하물며 다른 이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을 감히 손댈 수는 없는 것이다. 상인들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알라에게 기원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기를 알라에게 기원한다. 알라의 가호를 바라면서 다른 이의 것을 탐낼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경제윤리가 엄격한 것이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지리적으로 이들 지역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상인들의 길목이자 거점이었다. 동쪽으로부터 연결된 실크로드는 사마르칸트를 거쳐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카이로로 이어진다. 그들 대상단이 여행하는 길은 지형이 험난하고, 중간에 강도떼를 만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주인 잃은 물건을 싣고 다니는 일이 그들에게는 일상다반사였다. 여행을 하거나 순례를 가는 일상적인 여정에조차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르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내 손에 남의 물건이 남겨지는 일이 이렇게나 흔하다면,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계율로써 처리할 수밖에 없다. 물건과 그 귀속에 대해 철저한 윤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윤리는 공통감각이 되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매번 개인의 양심에 저울질의 부담을 줄 필요 없이 습관처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일, 항상 맞닥뜨리는 작은 사건들에 어떤 윤리를 만들고 실천하고 있을까? 매번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번뇌를 습관처럼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천일야화의 간단하고 명쾌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도 일상의 윤리를 세우고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을 배우고 실천해보자. 번뇌없이 가비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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